🐬(火) 제주 바다에 돌고래가 산다고?─두 여성 행동생태학자가 들려주는 돌고래 이야기

1. 돌고래를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돌고래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돌고래를 코끼리, 호랑이, 펭귄 같은 동물들과 함께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 영화, 책, 그림에서 만나 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돌고래는 상상 속의 완벽한 동물처럼 포장된 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똑똑하고 귀여운 동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분명 똑똑하고 귀여운 모습을 가진 돌고래지만 그 외에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매력을 알리고 싶어지기 시작한 건 제주도 앞바다에서 직접 남방큰돌고래를 만나면서였습니다. 나만 알고 있긴 아까운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 재미있는 전 세계의 해양포유류 이야기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예를 들면 제주도에서 직접 만난 남방큰돌고래는 분명 귀여운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커다란 어미나 어른 돌고래 옆에서 퐁퐁 튀어나오는 새끼 돌고래는 어설픈 움직임부터 아직 없어지지 않은 배냇주름까지 매 순간순간이 너무도 귀엽습니다. 그러나 남방큰돌고래는 귀여움뿐 아니라 멋있고 가끔 놀랄 정도로 카리스마 있으며 웃기는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연구 대상으로 꼭, 반드시, 고래여야만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사실 고래를 연구하기 이전까지 한강 유람선 말고는 타본 배도 없었고, 제주도 한 번 가본 적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얼핏 돌고래쇼를 본 기억이 흐릿하게 있긴 했지만, 무언가 뚜렷하고 인상적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시작하게 된 돌고래라는 동물의 생태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꽤 잘 맞았고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고래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나타날 때까지 몇 시간, 며칠을 찾아다니다 발견하면 그때부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문자 그대로 질리도록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다른 동물들에 비하여 발견하기가 어렵고, 물속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관찰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쌓아 가기가 힘들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수명이 길어서 내가 잠깐 본 것만으로 명확하게 어떤 얘기를 하기 어렵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바닷속에서 사는 동물이니만큼 배를 빌리거나, 관찰 기록에 비싼 장비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초연구도 안 되어 있어서 무언가 새롭고 혁신적인 연구를 시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과물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돈은 많이 드는데, 선도적인 연구도 아니라고 하면 연구비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남방큰돌고래는 당장 간당간당하게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동물도 아니었고, 어민들과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연구비 지원받기에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난 왜 지금 돌고래를 쫓아다니고 있는 걸까?’ 데이터 수집을 위해 제주도 해안도로를 운전하며 수도 없이 한 생각입니다. 제가 여기서 버티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이 동물의 매력입니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본 이 동물은 생각보다 크고, 강하고, 멋지면서도 짠한 매력이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물 위로 뛰어 오르는 순간에 빛나는 근육, 거친 파도를 헤치며 다니는 체력,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 찢는 강력함, 함께 사냥을 하는 협동 능력, 다른 개체의 새끼를 돌봐주는 관용, 상처 입고 괴로워하는 모습, 새끼를 잃고 보이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남방큰돌고래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고래류에서 보이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해서 아직은 이걸 더 해야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두 번째는 동료의 발견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여러 일들은 혼자서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행동을 관찰하고 드론을 날리며 운전을 하는 등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 흥미로운 내용을 함께 얘기하고 뭘 더 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후일을 계획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것이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내가 좋아하고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 생물들이 좀 더 오래도록,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2.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일을 벌이고

돌고래 같은 해양포유류는 대중이 원하는 대로, 인간의 즐거움과 정치적 선전을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는 진짜 고래가, 진짜 돌고래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찐’ 돌고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만난 남방큰돌고래 이야기, 다른 지역의 남방큰돌고래들과 다양한 돌고래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도대체 돌고래 연구를 하려면 뭘 보는지,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런 연구들이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며 알아낸 것은 무엇인지, 돌고래를 따라다니며 알게 된 그들의 삶에 대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담담하게 또는 신나게 써 내려갈 글을 통해 사람들이 이 생물들의 다양한 모습 또한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 갈 저희는 해양동물보전연구소 aka 마크(MARC, Marine Animal Research and Conservation)의 동반 설립자인 연구원1, 2입니다. 어쩌다 보니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의 행동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모인 두 명의 대학원생이 돌고래를 찾아 제주도 해안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던 2016년부터 슬금슬금 작당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MARC는 오래도록 제주에서 고래를 들여다보기를 바라며 만든 더 나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공간이자 해양동물의 생태 및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 중심의 비영리단체입니다.

MARC는 제주도에 서식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개체군의 서식지 이용, 소리 행동, 방류 개체들의 지속적 모니터링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바다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생물의 생태 및 보전과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자 합니다. 연구를 통해 학술적 연구 결과물로 내놓는 것은 물론, 이러한 정보들을 대중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런 해양생물의 생태 연구를 통해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이 아름다운 생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를, 이 글을 쓰는 것을 비롯한 저희의 활동으로 저희가 연구하는 이 멋진 동물들이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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