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성 행동생태학자가 들려주는 돌고래 이야기

지은이: MARC(Marine Animal Research and Conservation, 장수진&김미연)

돌고래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애정보다도 필요성의 문제였다. 백여 마리가 넘는 비슷비슷한 지느러미들을 적당히 특징에 맞춰 이름을 붙이면 기억이 쉽다. 등지느러미는 물론, 꼬리지느러미 끝부분에도 하얀 반점이 있는 화이트팁, 콩이 가로로 놓여 있는 모양의 상처를 가진 콩가, 끝부분이 화살표처럼 세모난 모양을 가진 애로우(arrow), 여기저기 뜯겨나간 상처들이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보이는 나비,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듯한 상처를 가진 뽀, 등지느러미 끝부분이 네모난 블록 모양이었던 네모. 때로는 상처의 형태보다 스토리를 담아 이름을 짓기도 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너무 좋았던 어느 10월에 죽은 새끼를 밀어내고 있던 시월이, 정치망에 들어갔던 것이 확인되었던 개체가 혹시라도 다시 들어간다면 혼자서도 다시 잘 빠져나오기를 바랐던 나오 등등……. 연상이 쉬운 이름을 붙일수록, 떠올리기가 쉽다. 쌍안경으로 돌고래들을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는 중에 뷰 파인더로 등지느러미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누군지 바로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126번과 83번, 11번이 있는 것 같아!”보다는 “카프카와 네모가 함께 다녀!” “애로우 옆에 못 보던 새끼가 생겼어!”가 훨씬 빠르게 인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