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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아프간 사태를 이해하게 하는 소설

미야우치 유스케,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

2021.08.30 | 조회 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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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Books

당신의 반려-콘텐츠: 세계와 연결된 사려 깊은 존재가 되기 위한 읽기 생활

오래전 평화에 관한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에 평화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의 90퍼센트는 전쟁, 분쟁, 국지전, 대리전, 새로운 국제적 갈등을 다루었다. 평화를 배우기 위해 인간이 남긴 역사라는 기록과 기억을 통해 전쟁‘들’의 전철을 되짚다니.

화력병기를 사용하는 전쟁의 참상은 일차대전이 끝난 뒤 유럽인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깨달음을 던졌다. 그로써 스스로 상찬해 마지않았던 ‘아름다운 시절(벨에포크)’이 막을 내리고, 자신들이 세워 올린 물질문명을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 책이 특히 주목한 지점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세계 각지에서 내전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대리전은 석유 같은 자원 이권을 둘러싸고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국지전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프리카 국가 간, 혹은 부족 간에는 국경이나 접경 지대의 물길을 놓고 사활을 건 유혈 충돌이 빈번하다. 아프리카의 물부족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인권과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교통 요지, 전략적 요충지에서는 고대로부터 세력 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냉전 후 이런 곳에서는 대리전과 내전이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어 왔다. 최근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현지시간 26일에는 IS가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해 카불공항은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2019년에 출간했던 SF소설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미야우치 유스케 소설)을 다시 꺼내 본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무관한 듯 연결된 이 연작소설집에는 정확히 지금 아프간 상황을 이해해볼 수 있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의 제목은 〈잘랄라바드의 병사들—침묵의 주파수〉이다.

루이라는 일본인이 재커리라는 미군을 고용해 잘랄라바드에서 카불로 가고자 한다. 소설의 무대인 잘랄라바드는 어떤 곳인가.

잘랄라바드가 위치한 곳은 국경 카이바르 고개와 수도 카불의 중간 지점. 그 때문에 수없이 공방의 거점이 되었다. 소비에트군이 점령했고, 무샤히딘(성전 수행자)이 점령했고, 탈레반(신학생)이 점령했고, 미군이 점령했고, 그리고 파슈툰해방전선(PLF)이 점령했다. 동시다발 테러 뒤 제일 먼저 공중폭격이 있었던 것도 이 땅이다. 지금도 폭격당한 지 얼마 안 되지만 사람들은 땅에 눌러 붙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잘랄라바드의 병사들—침묵의 주파수> p. 136
<잘랄라바드의 병사들—침묵의 주파수>의 공간적 배경 : 잘랄라바드-카불-바미안
<잘랄라바드의 병사들—침묵의 주파수>의 공간적 배경 : 잘랄라바드-카불-바미안

정부를 자처하는 통치세력이 ‘소비에트군ー무샤히딘ー탈레반ー미군ー파슈툰해방전선’으로 바뀌었다.(파슈툰해방전선은 작중 설정이다.) 파슈툰은 “아프간 최대 종족으로 파슈토어를 쓰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아프간족이라고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이란 국호는 파슈툰의 나라란 의미가 된다. 해서 아프간의 다른 세력들은 그 나라를 인정하지 않는다.

8월 28일 업데이트된 기사(한겨레기사)를 보니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IS가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다. IS는 탈레반의 적대 세력이다. IS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대표해 미국과 협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자세한 해설은 기사 링크에서 참조.)

‘이슬람국가-호라산’(IS-K), 소설에서도 ‘호라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구’ 아프가니스탄이 ‘호라산부족연합(Tribal Union of Khorasan)’으로 개명되었다는 설정배경이 해설되는 장면에서다. 인종 융화를 목적으로 국호를 변경했으며, 의미는 “태양이 떠오르는 곳”. 그러나 인종 융화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일이 소설 속 현재 다시 루이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참고로 이 소설은 근미래소설이다.)

루이는 거대한 비극을 겪은 인물이다. 그 경험 후 일생을 다해도 답을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을 안고 세계의 분쟁/내전 지역을 떠돌고 있다. 루이는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했던 인물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지금 “비극과 통계 사이의 한 점”에 서 있는 자신의 가이드 재커리와 동행하고 있다.

두 종류의 죽음이 발생했다. 주둔지에서 미군의 성범죄를 막기 위해 조직된 수사국 소속 여성 부사관이 살해됐다. 그리고 “은폐된 홀로코스트”가 있다. 전자는 가상의 사건이고, 후자는 아프간의 하자라인에게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원용했다. 하자라인은 아프간에서 한 세기 넘게 차별과 박해를 받고 학살에 시달리고 있는 민족이다. 파슈툰인에 의해. 왜일까?

하자라인의 고향은 바미안이다. 우리에겐 바미안 석굴로 유명한 그곳이 이들의 고향이다. 잘랄라바드와 수도 카불 그리고 바미안은 실크로드 위에 있다. 하자라인은 아프간을 물론 그 주변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한국인, 일본인과 같은 몽골로이드(몽골인종)다. 종교는 이슬람 시아파. 사고방식이 개방적이고 교육열이 높으며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등 이슬람권 내에서 독특한 문화를 가진 때문인지 하자라인은 고학력이 요구되는 직업에 종사하고 상류층을 형성했다고 한다.

파슈툰은 소수인종인 하자라의 위상과 저력을 위협으로 여겼다. 하자라인의 외모는 파슈툰인과 확연히 구분된다. 또한 일찍이 16~17세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했음에도 수니파가 아니라 시아파라서, 또 바미안 설굴이 거기 있다는 이유로 이교도로 낙인 찍혀 지속적으로 박해받고 살해당했다.

소설에서 루이가 재커리 몰래 ‘은폐된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추적하다, 하자라인 은거지에서 한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하자라 노인이 파괴된 바미안 석굴 사진을 내보이며 루이에게 묻는다.

“불교도인 자네에게 묻겠네. 이 불상은 왜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
“그건―.”
우상숭배 금지.
원리주의의 대
두. 기근과 경제 제재. 세계의 무관심.
(……)
“이 불상은…” 루이는 신중하게 단어 하나하나를 고른다. “파괴된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교도라고 의심을 받아 멸망에 처한 민족. 그 중심지인 바미안에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불상이 세워져 있지요 파슈툰은 그걸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요?”
(……)
“석불은 파괴된 게 아니에요. 틀림없이 하자라 민족을 생각해 저절로 무너진 거라고 봐야죠.”

<잘랄라바드의 병사들> p. 157

루이는 부처의 자비심이 발현된 거라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건가. 루이는 한 민족을 제노사이드로 몰아가는 행위에는 인종과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 말고 더 합당한 이유, 더욱 고귀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루이가 석불이 저절로 무너졌다고 말하는 건 불가해한 부조리극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4분에 한 명씩 사람이 죽고, 여행자의 행방불명률이 70%에 이르는 곳. 루이가 애초에 이토록 위험한 곳에 찾아온 이유는 다른 4편의 연작이 각각 다루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 속 사건의 교차지점 위에서 더듬어볼 수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은 오늘날 소설 독자라면 그다지 즐기지 않을 “분쟁이나 부조리가 그 테마”이다. 작가인 미야우치 유스케는 기성문학의 단골 테마이던 인간문명의 부조리, 인간본성의 문제를 SF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상당히 세련되고 아름답게 다루고 있다. SF소설로는 드물게 나오키상에 두 해 연속 최종 후보작을 올렸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소설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강하게 추천했다.”_이주인 시즈카(1992년 나오키상 수상)
“세계의 변화를 ‘지금’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작품은 가장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_기리노 나쓰오(1999년 나오키상 수상)
“나오키상에서 이 책이 평가되었다는 것은 급진적인 현대SF의 외양과는 달리 이 책이 SF 바깥에서도 ‘먹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_오모리 노조미(번역가․서평가)

<작품 해설> p. 309~310

단편들이 연작으로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조금 길지만 설명을 덧붙인다.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역병의 도시> 연작들의 ‘제네시스’에 해당한다. 다섯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가희로봇 DX9이 이 이야기에서 ‘창조’되며, 문명의 영락을 투사한 마천루 이미지가 처음 제시된다. 요하네스버그에 실재하는 랜드마크인 원통형 초고층빌딩이 소설의 무대. DX9은 인종⋅민족⋅종족 차이로 인한 기나긴 유혈을 종식시킬 신인류다. 현생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갔듯 내전으로 인해 소멸한 희생자의 의식이 전사된 DX9이 자신의 요람에 작별을 고한다. 원통형 마천루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DX9의 이미지는 이어지는 연작들에서 변주된다.

<로어사이드의 유령들—우리들의 짧은 영원> 로어사이드는 뉴욕 맨해튼, 911테러 이전 세계무역센터(WTC) 건물동들이 있던 구역. 근미래 어느 때, 2010년대 신축된 WTC 건물들에 대한 재개발 논의가 한창이다. 노후된 건물에 비자가 만료된 이민자들이 모여들고 있어 지역민들은 재개발에 찬성한다. 하지만 이참에 인종 문제를 해소하자며 기획된 911 재현쇼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역 정치인은 지지자의 목소리만 들으면 될 뿐이다. 허물어버릴 마천루의 각 층에 2001년 희생자의 의식을 전사하고 당시를 재현하도록 프로그래밍된 DX9들을 그때와 똑같이 배치한다. 9월 11일, 모하메드 아타(당시 알카에다 행동대장)를 연기하는 DX9의 의식이 탈취당해 목표한 대로 WTC로 향하지 않고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으로 돌진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기념의식이 아니라 테러가 재현되는 것인가. 뉴욕 맨해튼의 높다란 마천루는 또다시 터져버린 몸통 밖으로 망령들을 흩뿌린다.

<잘랄라바드의 병사들—침묵의 주파수> 뉴욕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일본인 류이치(루이)는 이 단편을 시작으로 이후 두 편에도 등장한다. 루이는 미국과 뉴욕의 역사를 배우며 자랐다. 인종의 도가니 혹은 샐러드 볼. 이 조어들은 미국의 힘의 원동력을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9⋅11이 두 번이나 벌어질 수 있는가! 루이의 세계관은 흔들린다. 여기에 미국 문화의 한복판에서 성장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중첩된다. ‘다흐마’, 영어로는 침묵의 탑. 고대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조장 시설인 원통형 다흐마 안으로 파슈툰이 무기로 개조한 DX9들이 투하된다.

<하드라마우트의 광대들—감시되는 단층들> 루이는 세계가 “이렇게 이상하게 되어버린 분기점을” 찾아보려는 듯 시간을 더욱 거슬러 올라 시바 여왕의 땅이었던 예멘의 하드라마우트에 와 있다. 하드라마우트의 고대 마천루 도시 ‘시밤’이 주무대다. 시멘트도 철골도 없이 오직 흙만으로 지은 10층 높이의 고대 건축물 오백여 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시밤에는 두 부류의 DX9이 존재한다. 오로지 아랍에 의한 예멘을 수복하고자 하는 ‘마디나’ 조직에 도입된 DX9. 시밤에서 자생한 신흥종교 집단에 도입된 DX9. 앞의 DX9은 이슬람의 “획일적인 전통”을 강요하는 역할을 대리하고, 뒤의 DX9은 자기 종교의 유일한 교의인 ‘다양성’을 감시한다. 칼 끝에도 흙이 바스라지는 불안정한 고대 마천루들 사이에서 두 집단에 고용된 동일기종의 DX9 용병들이 몸을 날려 전투를 치다.

<북도쿄의 아이들—무미건조한 땅에서의 생존> 일본 고도 경제성장의 흔적 혹은 폐허, 북도쿄의 고층 아파트 단지. 한국의 잠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키는 이곳에 세이와 리노가 살고 있다. 세이는 루이의 동생. 슬럼화된 장소는 이주자의 삶터가 되곤 한다. “유럽의 불황과 일본의 노동력 부족”이 맞물려 일본으로 이주한 이탈리아계, 러시아계, 인도계, 조선인 2세들이 세이와 루이의 동급생이다. 어른들은 이제 콘크리트 감옥이 된 아파트 안에서 밤이면 DX9에 접속해 온갖 언어와 음성으로 수다를 떨거나 사이버섹스를 즐기다가, 일제히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지면으로 낙하한다. 이것이 새로운 유희가 되어 유행처럼 번져 밤 10시만 되면 아파트 단지에는 요하네스버그의 마디바타워에서처럼 밤비가 내린다.

기독교가 가르치듯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창조했다는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며, 약탈과 살육의 명분을 지어내는 일에 신이 심어준 지혜를 가장 부지런히 사용한다. 아프리카의 내전, 뉴욕 한복판의 대규모 테러, 아프간 전쟁과 내전, 예멘 내전, 전범국 일본. 끔찍한 비극으로부터 인간이 배운 것은 무엇인가. 역사의 교훈을 딛고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며 나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인가, 인간의 본성이 본디 악하기 때문인가. 《요하네스버그의 천사들》은 인간 너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품고 있다. 전쟁을 일으킬 명분은 없다. 빼앗고 해치기 위해서일 뿐 정당화될 수 있는 죽임은 없다. 인종, 성별, 민족, 종파, 출신, 국적, 피부색, 빈부 등의 차이로 우리 주변에 일상화된 국지전은 또 얼마나 많은가. 더욱 어려워졌다면 모든 전투가 개인화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40년 동안 이어진 아프간 전쟁에 우리 각자의 전쟁이 겹쳐 보이는 건 코로나 블루의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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