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지은이: 문창윤

내가 다니는 대학교 1, 2학년 캠퍼스 앞에 무사시야(武蔵家)라는 라멘집이 있다. 가격이 한 그릇에 600엔부터이며 밥도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다. 돈이 궁한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중요한 존재다. 가게는 대학교 정문에서 엎어지면 닿는 거리에 있다. 가게 벽면에는 대학교 응원단, 동아리 부원들이 서로 무언가를 기념하며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가득하다. 가게에 들어가면 점원이 귀청이 떨어질 만큼 크게 “어서오세요!”라고 소리친다. 대부분의 좌석이 카운터 석인 무사시야는 점원과의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면의 물기를 터는 장면, 언제부터 끓였는지 모르겠는 육수 통을 앞이 뭉툭해진 나무 주걱으로 휘젓는 모습, 그리고 라멘이 완성됐을 때 점원들이 일제히 “라멘 나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광경이 코 앞에서 펼쳐진다.

무사시야의 라멘은 요코하마 이에케 라멘(横浜家系ラーメン)으로 돈코츠(돼지뼈) 육수 기반에 간장소스를 섞어 아주 진하고 짜게 먹는 라멘이다. 가장 중요한 면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하카타 돈코츠 라멘의 얇은 면이 아니라 한국 짬뽕 면보다 두껍다. 기본 토핑으로 김 두세 장과 차슈 그리고 데친 시금치를 얹은 것이 특징이다. 육수는 매우 걸쭉해서 먹고 나면 입 주변에 기름이 번들번들하니 아주 포만감 있는 한 끼가 된다. 처음에 가게에 들어가 매표기에 현금을 넣고 라멘을 고른다. 식권을 점원에게 건내면서 기름의 양, 짠 정도, 면을 삶는 정도를 고를 수가 있다. 나는 언제나 기름 보통(普通), 덜 짜게(薄め), 면은 꼬들면(硬め)로 주문한다. 점원이 “밥도 같이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언제나 배불리 먹으러 오는 나는 “곱빼기로 주세요”라고 말한다.

같이 오는 친구들도 언제나 비슷하게 주문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반찬 없기로 유명한 일본 식당이지만 무사시야에는 오이장아찌가 단지째 식탁에 놓여 있다. 친구들은 미리 나온 곱빼기 밥에 오이장아찌를 산더미만큼 얹는다. 그러고 나서는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퍼 입에 우겨 넣으며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면 맨밥에 눈이 가지만 라멘이 나오기까지 참으며 군침을 다신다. 카운터 안쪽의 주방에서 수건을 돌돌 감아 이마에 댄 점원이 “보통 라멘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내 앞에 라멘을 둔다. 그러면 다른 점원들이 일시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하고 역시나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큰 목소리로 합창한다. 그 소리에 놀라는 것도 순간, 돈코츠 육수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라멘 그릇 위로 둥둥 뜨는 기름이 내 시선을 끈다.

라멘에 데친 시금치, 처음 먹을 때는 어울릴까 하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두꺼운 면에 딸려 들어오는 느끼한 돼지기름에 씁쓸한 시금치의 맛이 더해져 맛이 균형을 찾는다. 그리고 두꺼운 면이 과하게 익거나 설익지 않는 경계에서 알맞게 삶겼을 때 맛볼 수 있는 절묘한 면발의 식감도 정말 좋다. 면을 거의 다 먹은 뒤, 덜 짜게 해도 충분히 내 입맛에 짠 되직한 국물로 밥을 적셔 렌게(우동 숟가락)로 퍼먹으면 그때만큼 행복할 때도 없다. 토핑으로 나온 김을 또 그 국물에 적셔 밥에 감싸 먹으면 그것 또한 별미다. 식탁에는 오이장아찌뿐만 아니라 두반장, 후추, 마늘, 식초 등 라멘을 질리지 않고 먹게 해주는 조미료들이 있다. 나는 주로 두반장을 밥 위에 얹어 국물과 함께 먹는다. 라멘의 기름지고 느끼함을 살짝 매콤한 두반장으로 중화시킨다. 이렇게 먹고도 언제나 밥이 모자란다. 나는 노랫소리와 점원의 큰 목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손을 번쩍 들고 “밥 좀 더 주세요!”라고 소리친다.

배부르게 먹은 뒤 쉬고 있을 시간 따윈 없다. 점심 시간에는 언제나 학생들이 긴 줄을 서기 때문에 라멘 그릇과 물컵 그리고 밥그릇을 카운터 위에 올려 놓고 “잘 먹었습니다.” 하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금은 캠퍼스가 달라 자주 못 가지만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친구들과 모여 무사시야 앞에 줄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무사시야가 가성비 좋은 추억의 공간이라면, 중화소바 키비(中華そばきび)는 나에게 라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 키비도 1, 2학년 캠퍼스 근처에 있었다. 캠퍼스보단 역에 가까워서 남녀노소 고객층이 다양했다. 무사시야에 비해 가게 규모는 협소하다. 4인 테이블 3개, 2인 테이블 1개, 벽면 1인 좌석 3개가 전부다. 가게 분위기는 어두운 조명으로 차분하다. 가게에 들어서면 흰색 야구모자를 뒤로 쓴 힙한 느낌의 아저씨 점원 두 명과 가끔 보이는 학생 아르바이트가 손님을 맞이한다. 야구모자를 쓴 점원은 주로 주방에서 요리에 집중하느라 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느낌이다. 가게 구조가 주방이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어 그렇게 느끼는 점도 있겠지만 주로 아르바이트 점원이 접객을 담당한다.

키비는 담백한 라멘(あっさりラーメン), 진한 라멘(こってりラーメン), 츠케소바(つけそば), 아부라소바(油そば) 이렇게 4가지 메뉴가 대표적이다. 나는 여기서 츠케소바와 아부라소바 이 두 개밖에 안 먹는다. 두 라멘은 일반적인 라멘과 다르다. 츠케소바는 문배동 육칼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면과 육수가 따로 나와 면을 육수에 적셔 먹는 음식이다. 한국에도 츠케멘이라는 형태로 들어와 있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츠케멘이라고 하면 돈코츠 육수에 해산물 가루를 더한 교카이돈코츠(魚介どんこつ) 육수를 생각한다. 그러나 키비의 츠케소바는 산뜻한 간장 육수 베이스의 산미가 특징인 육수를 쓴다. 간장의 감칠맛과 짠맛 그리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산미가 절묘하게 어울러져 묘하게 빠져들게 한다. 칼국수 면발 굵기의 면도 딱 적당하게 익혀져 나온다. 그리고 육수 안에 주사위 모양의 차슈와 멘마(대나무 죽순 장아찌)가 들어 있어 면과 함께 먹으면 이 또한 먹는 즐거움을 준다.

가격대는 800엔에서 1000엔대로 무사시야보다는 비싸 자주 가지는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집에 가는 길에 호화스러운 라멘을 먹자 싶을 때 주로 키비를 갔다. 저녁 즈음에 가면 제등에 주황 불빛이 들어와 키비라고 적혀 있는 하얀색 노렌¹을 더더욱 밝게 비춘다. 언제나 츠케소바를 주로 먹었지만 하루는 매표기에서 빨간 글씨로 쓰인 ‘밤에만’(夜の限定)이라는 메뉴를 발견했다. 이 메뉴가 아부라소바였다. 아부라소바는 잠실이나 합정에도 있는 라멘가게 멘야 하나비의 마제소바를 생각하면 알기 쉽다. 국물 없이 비벼 먹는 라멘이다. 키비의 아부라소바는 대량의 파와 마늘 그리고 다진 고기와 조각 낸 차슈가 올려져 있다. 그리고 그릇에 정가운데 놓인 노른자가 “날 터뜨려주세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마늘의 자극적인 냄새에 얼른 먹고 싶어 나무 젓가락으로 사정없이 비볐다. 다 비비고 나니 살짝 불그스름한 기운이 올라오는 게 은근한 매운맛도 있나 싶었다. 한 젓가락 먹고 나서 나는 키비라는 가게는 산미를 정말 잘 사용하는 가게라고 생각했다.

키비의 아부라소바는 향미유의 강렬한 향과 마늘의 자극적인 맛만 나기보다는 산미를 적절하게 사용해 자기 주장이 강렬한 맛들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능력이 정말 탁월 했다. 먹으면서 질릴 틈이 없었다. 게 눈 감추듯 면을 흡입하고 나면 다진 고기와 조각난 차슈가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토핑만 먹으면 너무 짜기에 나는 자연스레 동전 지갑에서 100엔을 꺼내 매표기에서 밥을 주문했다. 밥의 양도 너무 많지도 않고 딱 남은 아부라소바의 양념에 비벼 먹을 만큼 주는 게 이것마저도 요리사의 치밀한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을 싹싹 비운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나선다. 그러면 이미 거리는 어둑어둑하여 다시 한 번 가게 옆의 오렌지빛 제등에 눈이 간다. 나는 무사시야와 키비 이 두 곳을 경험하며 일본 유학 생활 중 라멘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많이 했다. 가게마다 다른 분위기와 맛을 경험하며 맛의 스펙트럼을 넓혀 갔다. 그러나 결국 나에게 처음으로 라멘이라는 존재를 각인해준 이 두 곳을 대체할 수는 없어, 이 가게들보다 맛있는 라멘을 먹었다고 할지라도 추억 보정이라는 향수가 나를 다시 메이다이마에(明大前)에 돌아오게 할 것이다.

💐 에디토리얼 뉴스레터를 통해 글을 쓰고 출판을 원하시는 분은  editorial@editorialbooks.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에디토리얼은 자기계발 분야의 도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창작자 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에디토리얼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