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글: 문창윤

벌써 연말이다. 한일 양국이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며 어느 정도 일상으로의 복귀가 시작됐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그 틈을 타 잠시 한국에 귀국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11월 말에 일본이 다시 문을 닫기 시작했다. 친구와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감탄한 것도 잠시, 부리나케 옷걸이에 걸린 짐들을 가방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급하게 비행기를 예약하는 바람에 제대로 가격 비교도 못했다. 가성비라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소비 기준을 어긴 바람에 찌뿌둥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오전 11시에 인천을 떠나 오후 1시에 나리타 도착 예정인 티켓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한 행정 처리 속도를 감안하면 검역이 끝나고 6일 동안 감금당할 호텔까지는 5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나보다 일찍 입국한 한국인들이 커뮤니티에 "오랫동안 공항 파이프 의자에 앉아서 대기했어요"라는 글을 올려준 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12월 8일에 일본에 입국했다. 여러 가지 검역과 서류를 끝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오니 저녁 8시 30분이었다. 7시간 반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요즘 보는 해외 오지 여행 유튜버들이 경험하는 ‘공항에서 긴 환승을 기다리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14일 격리 중 6일은 호텔 격리, 나머지는 자택 격리. 운이 안 좋은 입국자는 도쿄에서 320킬로미터나 떨어진 나고야에서 격리를 했다(호텔 격리가 끝나면 다시 비행기 타고 나리타로 온다). 나는 이 상황을 ‘운이 좋다’라고 생각해야 할지 몰라 헛웃음이 나왔다. 호텔 밥은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이 제공된다. 호텔 방송으로 "도시락 돌리고 있으니까 기다리세요"라는 멘트와 "도시락 다 돌렸으니까 밥 먹으세요"라는 멘트가 나온다. 도시락은 아주 차갑다. 컵 미소국을 같이 줘서 그나마 나았다. 차가운 반찬에 차가운 맨밥을 입에 우겨 넣으니 <오징어 게임> 속 병정 같은 생활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형편없는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지인에게 주려고 산 브라우니 과자와 조미 아몬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6일만 참자”라고 다짐하며 면세점 봉투를 구석에 밀어 넣었다.

나는 12월 23일부터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기운을 한가득 품은 도쿄 길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 그게 내가 지금 가장 기대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일본인 대다수가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케이크를 자르고 무언가를 축하한다. 신사(神社)의 나라에서 기독교 명절이 이렇게 번창한 것이 정말 신기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역 주변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 판매’라고 적힌 간이 판매대가 보인다. 산타 복장을 한 점원이 활기찬 목소리로 호객 행위를 한다. 나도 가끔 ‘사볼까?’ 하고 눈길이 가지만 혼자서 다 못 먹고 버릴 것이 분명하기에 관뒀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뿐 아니라 프라이드 치킨을 꼭 주문했다. 일본에서 크리스마스 때 KFC에 가보면 말도 안 되게 기다란 대기 행렬을 볼 수 있다. 완전 눅눅하고 엄청 짠 맛없는 치킨이지만 인기가 엄청나다!!

크리스마스 치킨의 차선책으로는 편의점 치킨이 있다. 편의점에는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편의점 냉동치킨 예약을 받는다는 전단지와 팸플릿이 나붙는다. (나는 일본 패밀리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인기 넘버원은 단연 방탄소년단 콜라보 케이크. 예약 개시 후 얼마 안 가 매진되었다.) 12월 24일부터 12월 25일까지는 가게에 있는 간이 튀김기의 열기와 연기, 냉동 닭다리가 전자레인지에 돌아가 가게에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어우러져 굉장히 바쁜 음식점을 방불케 한다. 가게 내부는 다이소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조악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미고 흘러나오는 음악과 광고도 크리스마스 풍으로 교체된다.

내가 근무하는 편의점은 주택가 한가운데 있다. 주로 물품을 예약하거나 사러 오는 사람들은 유모차를 끄는 주부나 바빠 보이는 직장인, 근처에 거주하시는 노인분들이 많다. 다들 양손 한가득 크리스마스 문구가 적힌 포장지를 들고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떠난다. 크리스마스 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어둑어둑 해진 길을 걷다 보면 주홍 불빛이 켜진 단독 주택에 눈이 간다. 다른 일본 명절 때와는 다른 쓸쓸함이 느껴진다.

내 대학 동기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함께하는 날이다. 가끔은 사치도 부려볼 겸 학생에게는 값비싼 파인 다이닝에 가서 커플이면 꼭 선물한다는 4℃의 액세서리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한다. (4℃는 이랜드그룹 계열 액세서리 브랜드 ‘로이드’에 맞먹는 일본 브랜드이다.) 그러고 나서는 도쿄 곳곳을 화려하게 밝히는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간다. 나무나 건물에 장식된 형형색색 조명이 도쿄의 야경과 어우러져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은 클리셰 덩어리의 크리스마스 로맨틱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기분을 맛볼 것이다.

나도 크리스마스 때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¹의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에비스 역에 내려서 머리 위 표지판을 참고해 10분가량 무빙 워크를 타고 가장 가까운 출구로 향했다. 가는 길은 지하철 4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는 노원역 환승 통로처럼 삭막했다. 그래서인지 일루미네이션에 대한 기대는 한층 커졌다. 일루미네이션과 가까운 출구에 도착하고 나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트리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황금빛 불빛이 트리 주변 가로수를 찬란하게 물들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트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였지만, 황금색 조명과 트리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온화하고 푸근한 분위기는 방문객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했다. 도쿄의 겨울은 두꺼운 양말을 신어도 발끝이 시릴 만큼 춥다. (서울이 더 춥지만!) 도쿄 도심 곳곳을 따스하게 밝히는 불빛의 향연이 추위를 물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국적과 종교를 불문하고 사랑과 평화가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는 일본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때 느꼈던 외로움도 조금은 달래졌던 것 같다.

막상 이와 같은 기분은 한국에 있을 때 느껴보지 못했다. 타국에 와서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는 그냥 특별한 날이니까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가족과의 유대감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소중함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2021년 12월 나는 일본에 입국해 단기 격리라는 사회와의 단절을 경험하며 연중 행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성탄절의 추억을 새삼 곱씹어보게 되었다. 빨리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우리 집안 고유의 요리인 물잡채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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