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소개한 일본은 부정적인 모습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읽다 보면 “얘는 일본을 이렇게 싫어하면서 왜 일본에 갔대?”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런 의문에 대답해보려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왜 일본을 좋아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나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제도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던 나는 남아도는 시간을 허비하려 서든어택과 메이플스토리 같은 국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질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새로운 자극을 찾고 있던 나는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와 함께 등장한 영화, 애니메이션 영상 콘텐츠 공유사이트를 찾아냈다. 나는 보물상자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곳에서 온갖 자료를 ‘찍먹’ 해보며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나섰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로봇, 타임 루프와 같은 흥미로운 소재를 일본 문화와 접목해 신선하고 역동적인 그림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오프닝과 엔딩에 쓰이는 캐치성이 뛰어난 음악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원래부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에 몰두하고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제도 교육을 등지다시피 한 나는 역설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학교 축제 개최를 위해 친구들과 밤새 몰두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학창 생활을 동경하게 됐다. 또 여름에는 마츠리(祭り)라는 일본식 동네 축제가 보여주는 축제의 정취를 너무나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러한 간접 경험의 축적이 일본에 대한 환상을 품게 했고 내가 유학까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나는 마츠리를 체험해보는, 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목표를 이뤘다. 대학의밴드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다. 내가 가본 마츠리는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람들이 유카타와 나막신을 신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현장에는 제등과 야키소바 카스텔라 등 음식을 파는 노점상으로 가득했다. 이미 이 시점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강둑에 돗자리를 펴고 불꽃놀이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말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환상이 이루어졌을 때 그 감격은 정말 대단했다. 그후로 이 추억에 사로잡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러한 성공 경험이 나에게는(또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좀 더 길게 살아보고 싶게 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일본의 유토리 세대와 사토리 세대들과 시간을 공유하며 그들의 소박한 삶을 즐기는 자세에 공감했다. 한국 말로는 ‘소확행’이라고 할까. 그들은 피 터지는 경쟁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즐기며 살아갔다. 나에게는 이런 일본인들의 모습이 체제적 과도기에 돌입한 인간 사회에서 부스러질 듯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역할보다는 궁극적으로 자기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아직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는 나로서는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여생을 살아가면서 매일 최선을 다하는 하루보다는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인들의 소박한 삶의 자세를 무턱대고 받아들이기는 싫다. 일본인들의 삶의 자세는 소박하다고 인정할 면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극한의 개인주의로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체득한 삶의 자세와 조화를 이루고 싶다. 한국인들은 삶과 정치를 분리하지 않기에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안을 이해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나의 행복한 삶과 시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삶은 함께 간다는 태도를 취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써온 일본의 치부를 들추었던 글들은 내가 영위하고 싶은 삶의 태도에 대한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나한테 한정되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나와 같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소비하는 ‘밈’이라는 인터넷 유행과 삶의 현장에서 일본 문화의 잔재를 꽤 많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온라인에서는 츤데레, 오타쿠 등 일본 서브컬처에서 비롯된 단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대사를 인용하거나 만화 속 주요 장면을 패러디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는 이자카야라는 일본식 선술집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일본의 만화 잡지인 『소년 점프』에 나오는 인기 만화를 즐겨 보고 <짱구>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면 엄청난 사람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러한 일본형 콘텐츠는 요즘 유행하는 <오징어 게임>이나 ‘BTS’ 같은 한국형 콘텐츠보다 한 세대 이상 빨리 한국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통해 일본이라는 이미지에 친근감을 형성하여 어떻게 보면 한일 간의 적대적 관계의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우리 삶에 깊게 자리잡아 MZ세대에게 폭넓게 영향을 끼치고 인터넷 세상과 현실 세계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비단 만화라는 비교적 신생 콘텐츠뿐만 아니라 패션 쪽에서도 그러한 영향은 있었다. 9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인 기무라 타쿠야의 패션, 빔스나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와 같은 편집샵, 시티보이 룩을 지향하는 패션 잡지 『뽀빠이』 등의 사례는 현재 한국 패션 시장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된 롤모델이었다. 이런 발전을 통해 2010년대에는 지드래곤이 아시아의 패션 아이콘이라고 불리고, 현재는 블랙핑크나 엑소 등 많은 아이돌이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앰버서더를 맡고 있다.

지금 나는 어릴 적 경험했던 일본 문화의 영향력을 일본에서 반대로 경험하고 있다. 일본에서 동방신기와 겨울연가가 유행했던 1차 한류 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일본 전역에 한국의 정취가 깃들고 있다. 한국형 아이돌을 지향하는 일본 아이돌 그룹이 생겨나고 도심에는 <이태원 클라스>가 배경이 된 한국형 포차들이 등장했다. 치킨과 짜장면을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점포가 수도권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은 언택트 시대의 OTT 서비스가 더더욱 폭넓게 가속시킬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나와 같은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들도 일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기회가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문화 믹스가 또 다른 ‘나’ 같은 오타쿠를 만들어내고 현지에서 살아가게 만들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진 미래 세대의 등장을 예고할 거라 생각한다.

💐 에디토리얼 뉴스레터를 통해 글을 쓰고 출판을 원하시는 분은  editorial@editorialbooks.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에디토리얼은 자기계발 분야의 도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창작자 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에디토리얼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