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쿠마가이를 먼저 보낸 나는 집에 돌아와 고양이와 함께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핸드폰도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서 밖에 나가면 완전 원시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 전화번호의 장기정지를 푼다 하더라도 컨트리락이 걸린 내 핸드폰은 무용지물이었다. 5시 반이 되자 자동급식기에 녹음된 아빠의 “고양아 밥 먹어~”라는 대사가 반복되며 사료가 쏟아졌다. 우리 집 고양이는 자율급식 따위는 생각에 없는 것처럼 밥그릇에 머리를 처박으며 사료를 마셨다. 나는 마룻바닥에 있던 고양이가 일어난 자리에 손을 얹고 땅거미 지는 도봉구에서 여유를 즐겼다.

완전히 깜깜해진 집 안에서 벽을 더듬으며 형광등을 켠 나는 친구들과 저녁이라도 먹을까 싶지만 결국은 컴퓨터를 켠다. 언제나 그렇듯이 디스코드¹를 켜고 온라인 상태인 몇 명을 호출하지만 다들 각자 게임하는지 반응은 없다. 오래된 나무 창틀이 요란한 소리를 내자, 늘어진 수면바지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겨울 공기에 발가락 끝이 시리다.

별 다른 소득 없이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한 나는 침대 발치에 있는 식빵 모양의 고양이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비볐다. 안방에서는 희미하게 격투기 경기를 보는 소리가 들렸다. 복학 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보내는 이 시간이 도쿄에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칠 때의 피로감을 상쇄시켜 주는 굉장한 요양의 시간이었다.

유학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선택을 내가 해 나간다’라는 시간들이 나만의 기준을 명확히 해주고, 나만의 취향, 개성을 쌓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기회들은 내가 경험한 한국의 제도권 교육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초기 유학 생활은 더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불만족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정신적 요양을 한 것도 벌써 1주일이 다 되어 갔다. 오프라인보단 온라인이 더 편한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터넷 렉카들이 끌어 모아온 자료를 뒤적이며 내 흥미를 채워 가고 있었다. 시시껄렁한 글을 보며 웃고 있던 참, 아빠가 안방에서 “창윤아, 이거 봐봐” 하고 날 부르셨다. 아빠는 언제나 내가 흥미 가질 만한 주제의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방송에 나오면 나를 불러주셨다. 일본에 유학한 이래로 특히 일본 관련 토픽을 많이 알려주셔서 이번에도 일본 소식일 것 같았다.

부정적인 내용이긴 했지만 일본 내용이긴 했다. 일본 정부에서 해외 입국자 제한을 하겠다는 뉴스였다. 뉴스 속보로 간단히 전달되어서 상세 사항은 몰랐지만 나에게는 일본 입국이 금지된다는 소식으로밖에 안 느껴졌다. 청천벽력이었다.

오뉴월부터 시작되는 취업 준비를 못하게 된다는 것과 학교를 강제 휴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한국보다 더 대졸자의 나이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취업 시장에서 이 상황은 내가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이미 징병으로 인해 2년이라는 터울이 발생했기 때문.) 그리고 지금은 다르지만 일본의 취업 준비는 ‘리쿠르트’사가 주최하는 대면식 대규모 취업 페어에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일본 입국이 시급해졌다.

일단 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속 대학교 국제교육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81이라는 국제 번호를 적고 구글에서 대학교 사무실 번호를 급하게 찾았다. 수화기에서는 찢어지는 음질의 교가가 흘러나오고 나는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평소보다 오래 걸리는 대기 시간에 나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나서 사무실도 아마 혼돈의 도가니가 아닐까 싶었다.

“○○○대학교 국제교육 사무실입니다.” 여느 때처럼 일하기 싫은 교직원의 목소리였다. 나는 일본 정부의 입국 제한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대학교는 어떻게 대처하고 유학생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 마치 기자의 질문 공세처럼 말을 퍼부었다. 돌아온 대답은 절망스러웠다. “네, 입국 제한이라고 하네요. 저희도 뭐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게 끝이었다. 일본에서 의지할 수 있는 기관은 대학뿐이었던 나는 더 이상 방도가 없었다.

급하게 라인 채팅방을 뒤져본다. “분명 2016년 입학 유학생 단톡방이 있었을 텐데…” 마지막 대화 기록은 2019년에 멈춰 있는 채팅방에 도움을 청하는 장문의 글을 보냈다. 단톡방에는 소속 학과 한국인 교수님도 계셔서 무능한 ‘국제교육’ 사무실의 교직원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단톡방에는 졸업생 몇 명과 고학년 몇 명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잠수를 타고 있던 졸업생 몇 명은 귀찮은 듯 단톡방에서 나가버렸다.

다행히 남아 있던 고학년 몇 명은 마침 자신들도 한국에 있다 하며 곤란에 빠져 있었다. 교수님도 당황하시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대학의 대응이 전무하다는 말씀뿐이었다. 그래도 답답한 동사무소 직원과 같던 사무실 직원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대응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이로 인해 내가 해야 할 것이 분명해진 나는 부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빠르게 돌아갈 채비를 했다.

외국에서 의지할 곳은 소속 대학밖에 없는 유학생에게 갑작스레 문제가 발생하면 처지가 무척 곤란해진다. 미국 골드러시 시기 서부의 한적한 마을에 흘러들어 온 이방인 같다고 할까. 더 나은 처지를 찾아 외지에 왔건만 환영은커녕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어서 외로움이 뼛골에 사무치는 그런 처지.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쉽게 좌절하지 않으려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가족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나는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편수도 이미 감소한 때라 내가 탈 수 있는 비행기는 아침 7시 출발편뿐이었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찌뿌둥했다. 가져왔던 짐과 일본에 갈 때 가져가지 못했던 내 물건들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내 방을 둘러봤다. 그 많던 옷가지들과 물건들이 사라진 한적한 내 방은 빛바랜 액자에 들어 있을 것 같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공항까지는 멀지만 수락산 버스 터미널까지는 가까웠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나의 홍대병(힙스터의 한국식 용어)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한국 인디 밴드의 첫 앨범의 타이틀 곡과 일본의 시티팝을 들으며 새벽 감성 바로미터의 막대를 오른쪽 끝까지 당겼다.

한적한 인천 공항, 빠른 출국 수속, 어두운 면세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때의 풍경이었다. 탑승 게이트 앞에서 대학 동기와 우연히 만났다. 비슷한 시기의 겨울 방학에 한국으로 귀성길에 올라, 일본 정부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가는 유학생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우연이라지만 만날 확률은 높았을 것이다.  그닥 친하지 않은 친구였지만 비슷한 처지의 동포를 만나면 그만큼 기쁜 것도 없기에 서로 알아보고는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친구는 가장 뒷좌석이었다. 비어 있는 좌석으로 가득했지만 널널한 간격을 두고 승객을 배치한 모양이었다. 승무원이 전에 보지 못했던 방역 관련 서류를 나눠 주고 있엇다. 첫 비행기 탔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입국 카드 작성할 때 문자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심에 손을 덜덜 떨며 작성하는 기분이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몇번이고 해보는 유학비자 대상자 재입국 심사이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에 내 몸도 얼어붙었다. 기내에서 작성한 몇 가지 새로운 서류를 꼼꼼히 읽은 공항 직원은 ‘검역 통과’가 적혀 있는 학종이 사이즈의 서류를 발급해줬다.

아슬아슬하게 일본에 입국한 나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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