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에 돌고래가 산다고?─두 여성 행동생태학자가 들려주는 돌고래 이야기

2019년 6월 중순 어느 날 “꼬리가 잘린 돌고래가 있네요. 혹시 이 돌고래가 누군지 아나요?”라는 문자와 함께 영상이 도착했다. 영상 속 돌고래는 꼬리가 없이 꼬리자루만 남아 있었고, 다 자랐다기에는 작은 몸집으로 요트에 붙어 선수파를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연구 중이던 MARC의 연구원이 핫핑크돌핀스 활동가와 함께 며칠 동안 발견 지역 근처의 해안도로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이 개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2015년과 2016년에 제주에서 나타난 유사한 사례들과 해외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이 돌고래는 생존하지 못하고 거의 확실히 죽었거나, 죽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약 두 달 후 이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는 다시 발견된 꼬리 없는 돌고래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왜 ‘오래’가 꼬리 없이 야생에서 살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돌고래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전체 몸의 뒤쪽 1/3을 추진하는 데 사용하며 그중 가장 많은 힘이 유연하게 움직이는 꼬리에서 나온다. 숨을 쉬기 위해 끊임없이 물속에서 움직이고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돌고래의 몸에서 움직임에 가장 중요한 꼬리가 ‘오래’처럼 절단된 개체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예측이 그간의 중론이었다.

처음 영상으로 보았을 때, ‘오래’는 요트 옆에서 선수파를 타고 곧잘 유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꼬리가 없는 돌고래 중 가장 유명한 미국의 윈터(Winter)나 일본의 후지(Fuji)에 대한 연구로 미루어 보아 이렇게 꼬리에 큰 상처를 입은 돌고래는 몸을 좌우로 움직여 유영할 수는 있으나 빠른 속력을 내기는 힘들다. 돌고래는 일반적으로 꼬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추진력을 얻는다. 그러나 꼬리를 잃은 돌고래는 이런 방식으로 움직여 추진력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돌고래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위아래로 움직이며 유영하게 디자인된 몸 구조에 맞지 않는 움직임을 지속해야만 한다. 따라서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몸을 계속 사용하는 행위로 인해 지속적인 무리가 생길 수 있어 먹이를 먹거나 다른 개체를 따라 이동하는 것 또한 어려울 수 있기에 생존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오래가 후지나 윈터처럼 수족관에서 지내는 다른 개체와 달리 거친 야생에서 느리고 불안정한 유영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2005년 겨울 어느 날 미국 플로리다주 모스키토 석호(Mosquito Lagoon)에서 발견된 윈터는 꽃게잡이 그물에 온몸이 감긴 상태였다.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윈터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구조 후 지속적인 치료에도 괴사가 멈추지 않아 꼬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절단된 후 윈터는 온몸을 좌우로 움직여 유영하는 법을 터득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유영 방식이 돌고래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추측했다. 돌고래의 몸통 뒤쪽 1/3은 추진력을 얻는 데 유리한 형태이다. 몸통의 뒤쪽은 위아래로 움직이는 꼬리의 운동을 지지해주는 근육과 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양옆으로 움직이게 되면서 뼈의 기형과 근육의 변형으로 인한 통증,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윈터는 그러한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윈터가 좀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많은 의료진과 보철 전문가들이 모여 윈터에게 꼭 맞는 인공 꼬리를 제작했다. 현재 윈터는 수족관에서 생활하며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한다.

사실 윈터보다 더 일찍이 고무로 만든 인공 꼬리를 받아 생활한 돌고래가 있다. 일본 오키나와의 츠라우미 수족관(Okinawa Churaumi Aquarium)에서 살았던 ‘후지’라는 이름의 돌고래이다. 후지는 약 30살로 추정되는 해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꼬리가 괴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꼬리의 약 75%를 절단하게 되었다. 꼬리가 절단된 이후, 후지는 몸통을 양옆으로 흔들며 곧잘 유영을 했고 점프까지 하며 수족관에서 지내는 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유영 속도가 느려지고 몸의 움직임이 달라져서인지 주변의 돌고래와 어울리지 못했다. 후지는 삶의 의욕을 잃은 것처럼 서서히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연구진과 재활 전문가들은 후지에게 재활치료와 함께 고무로 된 인공 꼬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새로 생긴 꼬리를 달고 후지는 새로 유영하는 방식을 터득했고, 다시금 수족관의 다른 돌고래와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오래’는 위의 두 사례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여 유영해야 할 텐데, 야생에서 홀로 그 방법을 익혀야 했다. 그런 유영 방식으로 움직이는 먹이를 사냥할 수 있을까? 좌우로 움직이는 유영법을 지속할 때, 압력을 받는 척추와 근육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처음 ‘오래’가 발견되었을 당시 ‘오래’ 주변에는 다른 돌고래가 보이지 않았다. ‘오래’ 또한 후지처럼 다른 돌고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다른 돌고래의 도움 없이 ‘오래’ 혼자 먹이 사냥을 하며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등등 ‘오래’는 첫 발견 후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남겨 둔 채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오래’가 오래 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꼬리 없는 돌고래의 소식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우리는 ‘오래’를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고, 우리가 하던 남방큰돌고래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름이 채 지나가기도 전이었다. 돌고래 무리를 관찰하던 드론 모니터에 아무 예고도 없이 꼬리가 없는 돌고래가 나타났다. 그 순간 복잡하게 들뜨고 아팠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오래’는 몸을 좌우로 흔들어 가며 유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온몸을 뒤틀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움직임이 너무 힘들어 보여 안타까웠다.

살아 있는 ‘오래’를 발견했으니 감정은 잠시 치워 두고 ‘오래’의 건강 상태와 행동들을 눈여겨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래’가 발견된 지역을 모니터링하면서 ‘오래’가 다시 나타나면 행동을 관찰하고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을 찍었다. 이렇게 찍힌 영상들로 연구진이 우려했던 부분에 대한 의문을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었다.

움직임은 예측대로였다. 물속에서는 몸을 양옆으로 흔들며 유영을 하다가 숨을 쉬러 수면 위로 올라온다. 숨을 쉰 후 다시 내려갈 때는 몸을 왼쪽으로 뒤틀어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다른 돌고래보다 수면 위에서 만들어지는 물보라가 많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요란스러워 몇 번 보고 나면 드론 없이도 ‘오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유영 속도나 무리 생활에 대한 추측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크거나 작은 무리 주변에서 ‘오래’가 발견되면 어김없이 그 무리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다니던 무리가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오래’는 뒤처지다가 나중엔 무리에서 떨어져나왔다. 때로는 혼자 유영하고 있는 ‘오래’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런 발견을 토대로 ‘오래’의 움직임은 야생 남방큰돌고래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으며, 무리와 함께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이전처럼 생활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었다. ‘오래’가 사냥을 하고 충분한 먹이 활동을 하고 있으며 건강 상태가 나빠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우리는 상공에 드론을 띄워 ‘오래’의 몸을 기록했다. 몸길이 대비 몸의 면적을 계산하여 살이 얼마나 빠지는지를 추정해 보는 것이다. 비교 결과 오래는 2019년 내내 몸의 비율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오래는 다른 돌고래에 비하여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고, 움직이는 데도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수 있다. 만약 ‘오래’가 먹이 활동을 하지 못했거나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적은 양의 먹이만을 먹어 왔다면 급격히 살이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는 여전히 어느 정도 몸집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관찰을 지속하던 11월 초, 먹이를 입에 물고 올라와 던진 후 다시 잡아먹는 행동도 포착되었다. ‘오래’는 제주도 바다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MARC의 2019년 제주도 필드 시즌이 끝날 때까지 ‘오래’는 제주도 앞바다에서 여러 번 발견되었다. 겨울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우리가 ‘오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지켜보는 것이었기에 내년 조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조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에서 다른 돌고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오래’를 만날 수 있었다. 그새 새로운 유영 스타일에 한결 익숙해진 듯 움직임이 매끄러워졌다.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왔다 내려갈 때도 격렬한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물도 거의 튀지 않았다. 혼자 나타나기보다는 대체로 다른 돌고래들과 무리를 지어 발견되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 보아도 건강상 큰 문제가 있어 보이는 행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래’는 아마도 꼬리 없는 야생 돌고래 삶에 조금 더 적응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2020년도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우리의 예측을 보기 좋게 비켜나간 오래는 2021년인 지금도 제주도 앞바다에서 발견된다.

‘오래’가 제주도 바다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확신과 안도를 가질 무렵 꼬리에 낚싯줄이 엉켜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는 남방큰돌고래 새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여러 번 만날수록 낚싯줄이 꼬리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상처가 깊어지고, 유영 중에 매끄럽지 않은 움직임이 늘어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오래’의 회복이 얼마나 귀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우리에게 ‘오래’는 해양쓰레기의 위험성을 알려준 존재이자,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된 돌고래가 신체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다시 회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대상이다. ‘오래’는 나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대견함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야생동물의 강인함도 새삼 일깨워주었다. 이런 ‘오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우리가 오래도록 ‘오래’를 바다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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