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휴대하는 철학

<여는 말>, 『세계철학사』 1권

1권의 부제는 ‘지중해세계의 철학’, 2권의 부제는 ‘아시아세계의 철학’, 3권의 부제는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이다. 1권은 2011년(개정판 2018년), 2권은 2018년, 3권은 2021년에 출간되었다. 카르토그라피(cartography)는 지도 제작법, 작도법이란 뜻이다. 나도 아직 3권을 읽지 못해 책 소개글을 찾아보니, “근대성의 전체 지도를 그리는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1권의 ‘여는 말’에서 저자가 내비쳤던 3권의 구성 중 1부가 ‘근대성’이었다. 즉 3권의 1부가 한 권의 책이 된바 저술의 틀은 4권으로 확대되었다. 4권은 아직 미출간. 지금 막 1권의 첫 페이지인 ‘‘여는 말’을 펼쳐든 나로서는 기대감을 한껏 품고 읽어 나갈 뿐.

방대한 저술의 첫 책의 첫 문단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인용문의 “어떤 특정한 세계”는 서양을, "사유"는 서양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월드와이드웹이 개발된 이래 정보망이 세계를 균질적으로 연결하게 됨으로써(즉 정보화) 세계는 비로소 서양철학자들이 사용하던 “세계 전체”의 개념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20세기의 세계철학사가 실질적으로 서구 철학사였듯, 정보화는 앵글로-색슨의, 세계화는 미국과 초국적 기업들의 헤게모니 장악을 통해 이룩되었다. 따라서 세계화는 “자본과 기술, 대중문화의 맹목적인 팽창이 빚어낸 난맥상일 뿐이다.”

저자는 철학자로서 현재까지의 세계화 흐름에 저항하고 진정한 보편성과 객관성을 찾아 나서기 위해 “과거의 음미를 거쳐 현재에로 회귀”하려 한다. “과거의 음미”가 1권과 2권에, “현재에로 회귀”가 3권(미출간인 4권을 포함)에 해당한다.

“철학이라는 행위는 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진행”되었다. 우리가 읽고 있는 1권의 부제인 “지중해세계의 철학”에서 지중해세계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있고, 2권의 부제인 “아시아세계의 철학”의 아시아세계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다. 이제 1권으로 한정해서 지리적 지평을 살펴보면, 지중해세계는 고대 그리스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세계를 포괄한다. 다음 인용문에서 열거되는 지역들이다(지명은 라틴어로 표기됨).

철학은 지리적 지평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탄생한 정신문화였는데, 유라시아 대륙 안에서도 “유목적 삶”이 펼쳐졌던 중앙아시아가 아니라 그 아래쪽에서 형성된 “정주 문명의 산물”이다. “철학사 전체가 사실상 정주 문명의 창조물”이다.

‘여는 말’에서 언급된 저술 지침(원칙)도 기억하면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겠다. “철학사는 ‘철학’사이자 철학’사’”라는 것. 바꿔 말해 “역사와 철학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예컨대, 어떤 철학자에게 있어 철학적 측면은 역사적 측면보다 강조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배치의 양극단은 “역사 없는 철학”과 “철학 없는 역사”로 갈라질 수 있다. 저자의 입장은 명확히 진술되어 있다. “모든 논의는 논의 대상의 고유한 성격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반(反)환원주의적 입장”이다.

또한 이 입장에 근거할 때 어떤 철학자가 이룬 “철학화의 높이”가 상당하다면 [역사적 지평에서의 평가를 기계적으로 공평히 다루기보다는] 그 철학 사상을 자체로서 다루어야 한다. “한 철학자에게 있어 철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은 대개 반비례한다. 한 인간이 역사와 철학에 동시에 헌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이어지는 저자의 단언은 이러하다. “플라톤과 페리클레스를, 칸트와 나폴레옹을, 주자와 제갈량을 겸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긍이 잘 안 된다면 책을 읽어 가며 확인해보면 될 터. 요점은 논의 대상마다 역사와 철학의 비중을 달리할 거라는 점이다.

2화는 『세계철학사 1』 '1장 철학의 탄생'을 읽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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