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글: 문창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내 자신을 꾸미는 방법을 몰랐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집에 있던 옷을 입었다. 나에게 옷은 방한과 뚱뚱했던 내 몸매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사춘기 소년은 과체중이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미용실이나 옷가게를 빈번하게 들리며 대학교 데뷔를 준비했다. 나도 일본에서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 유행한다는 옷을 몇 가지 사 입었다. 그 당시 지드래곤이 입어서 유행했던 MA-1 항공점퍼를 하나 가졌다고 자신감이 쭉쭉 올랐다. 나는 그때 ‘이 정도 옷이면 10년은 입겠다!’라고 생각했었다.

일본에 와서는 내가 언제나 외면해 왔던 옷 입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들 서로의 색깔을 자랑하기 바빴다. 좀체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의 빈티지 옷을 입거나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을 착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태까지 패션 쪽과는 영 거리가 멀었던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독특한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도 남들과 차별되는 옷을 입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건 쉽지 않았다. 패션이라는 분야에 경험치가 0에 수렴했던 나는 밑바닥부터 훑으며 나만의 시야를 가져야 했다.

내 패션에 ‘빈티지’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에 나는 평범하게 ‘유니클로’ ‘H&M’과 같은 SPA브랜드를 소비했다. 남들과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싶은 모험심은 있었지만 대학생의 부실한 지갑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빨리 질리는 성격이었던 나는 구제 옷과 명품 브랜드 등 여러 가지 패션 분야에 흥미를 가졌다. 흥미는 점점 가성비 좋은 ‘구제 옷’에 대한 관심으로 집중되어 갔다.

학교 근처에는 ‘시모키타자와’라는 구제 옷으로 유명한 거리가 있다. 나와 동세대의 대학생들도 많이 다니는 거리라 너무 올드하지도 않다. 90년대 폴로를 취급하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는 브랜드 없는 저렴한 구제 옷을 파는데 종류가 다양해서 취향에 따라 구경하고 고르는 재미가 있다. 2차대전 때 미군이 입었던 필드점퍼, 프랑스·체코·러시아 군의 옛날 군복, 개구리라고 불리는 우드랜드 카모 바지 등의 군복을 전문으로 다루는 밀리터리 빈티지숍. 아메리칸 헤리티지라는 수식어를 붙인 오래된 리바이스 청바지, 1960년대 미국 아이비리그 룩에서 나올 법한 두꺼운 핸드 니트 스웨터 등을 파는 빈티지숍 등 정말 다양하다.

처음에는 나는 주로 ‘MICMO’란 이름의 구제 옷가게를 갔다. 이 가게는 요즘 동묘의 구제 옷가게나 명동 에이랜드 4층의 빈티지숍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젊은 학생들이 유행으로 소비하는 구제 옷을 주로 다루는 가게이며 가격대가 저렴했다. 당시에는 큰 사이즈의 코듀로이 팬츠나 3D 니트 오버핏 버튼다운 셔츠 등 스트리트 패션을 연출하기 좋은 아이템이 주로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주로 무명 브랜드의 데님 셔츠와 스웨트 셔츠를 구매했다. 굉장히 싼데 사용감이 없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주류 패션 브랜드 제품에서는 보기 드문 디테일과 디자인 때문이었다.

나는 저렴한 구제 옷을 입으며 아메리칸 헤리티지를 중심으로 좀 더 매니악한 분야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스웨트 셔츠인 90년대 챔피언의 리버스 위브를 시작으로 60년대 미해군의 서비스 슈즈, 울 셔츠나 울 담요의 명가인 펜들턴의 데드 스탁 제품 등을 경험해보고 싶어지면서 ‘MICMO’와 같은 저렴한 구제 옷가게와는 결별했다. 대로변에 많이 있던 대중적인 구제 옷가게들을 떠나 나는 좀 더 골목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내가 만난 곳은 ‘SPIKE’라는 가게다. SPIKE는 좀 더 매니아들을 위한 빈티지 옷이 중심이다. 이 가게는 갈 때마다 길이 헷갈렸다. 비슷한 골목들 사이사이를 지나다보면 ‘SPIKE’라고 적힌 작은 나무 간판을 볼 수 있다. 가게 입구도 굉장히 협소하다. 처음 오는 사람이면 ‘여기 맞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심스러운 느낌이다. 가게에는 미공군 헬멧 가방, 미해군 N1 덱자켓 등 빈티지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 아이템 중심이었다. 그렇다고 아메리칸 헤리티지와 같은 클래식한 연출보다는 큰 사이즈의 옷들로 스트리트한 연출을 보여주는 가게였다. 그래도 나는 이 가게에서 인터넷 검색으로만 보던 희귀한 군복이나 60년대 모헤어 가디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옛날 군복이나 옛날 복장을 선호하는 것은 잘못하면 코스프레 같은 느낌을 주기 쉽다. 단순 코스프레가 되지 않으려면 시모키타자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패션에서 영감을 받아 나만의 해석을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 곳이 있다. 그곳은 학교 근처 메이다이마에 역에 있는 ‘WILKO’라는 곳이다. 올해로 7년을 맞이한 이 옷가게는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학교 주변 거리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나 다이소 정도의 주거 편의 시설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 거리에 옷가게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그런데다 가게 입구가 좁고 안쪽으로 길쭉한 구조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가기 힘든 인상을 준다. 나는 시모키타자와의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옷가게를 찾아내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들어가서 어떤 물건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WILKO’는 주로 아메카지 느낌의 옷들을 다뤘다. 그렇다고 해서 그해 유행을 타는 아메카지 옷을 대량으로 들여 판매하지는 않았다. 빈티지 옷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매력인 하나밖에 없는 옷이라는 매력을 잘 어필했다. 때로는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디자인의 옷들을 들여오기도 했다. 이런 면이 ‘WILKO’가 모델이나 매니아에게 꾸준히 인기를 받는 이유일 테다. ‘WILKO’의 오너는 단순히 구제 옷을 판매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게에서 모델들과 협업하여 만든 자체 제작 의류를 판매하거나 ‘YOGEE NEW WAVES’라는 인기 밴드의 코디를 맡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했다. 나는 ‘WILKO’가 단순한 구제 옷 소매점을 넘어 패션업계에서 활동하는 업계인이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려 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작 활동을 하는 라운지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언제나 입어 왔던 옷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모델들을 보고 그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영감을 받는지에 대해 대화했다. 가게 점원 중 한 명인 코타는 모델을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지금은 다행히도 모델로 아주 잘 활동하고 있다.) 이 친구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영감을 받아 과감하게 자기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밀어버렸다. 이목을 이끄는 머리스타일과 상반되게 코타는 언제나 옷은 수수한 아메카지 스타일의 옷으로 꾸몄다. 그리고 과하지 않게 옷들을 레이어드하여 톤온톤을 아주 세련되게 표현했다. 머리 스타일이 주는 강력한 느낌과 상반되는 수수하며 세련된 옷차림이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웠다. 이에 나는 스타일의 경계선을 뛰어넘는 옷의 조합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도전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성공적인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오히려 옷차림이 희한하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WILKO는 내가 나만의 취향을 찾고 즐기는 시도를 해보게 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삶을 재미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가도록 해줬던 장소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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