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글 : 문창윤

비행기로 오사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 간사이 공항과 난바역을 연결하는 난카이(南海) 전철을 잘 알 것이다. 간사이 공항과 난바역 사이에 츠다키타마치(津田北町)라는 동네가 있다. 츠다키타마치는 기시와다(岸和田) 단지리 마츠리(だんじり祭り)라는 지역 축제와 벚꽃이 피는 계절의 아름다운 기시와다성(岸和田城)으로 유명하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의 관심을 끌 만한 특징이 거의 없다. 층이 낮은 주택들이 늘어선 가운데로 드문드문 임대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는 평범한 동네다. 나에게도 이곳의 인상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상대는 츠다키타마치에 살고 있다. 직장인인 그녀보다는 대학생인 내가 주로 오사카에 간다. 도쿄만큼 규모가 있는 오사카이다 보니 교통편은 다양하다. 신칸센, 비행기, 보통 열차, 버스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대학생들은 히치 하이킹으로 오사카에 가기도 한다. 대학생들에게 비행기와 신칸센은 어려운 선택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주로 ‘청춘 18 티켓’이라는 일본 여객철도 JR(동일본, 서일본, 토카이 등등 다양하다)에서 제공하는 티켓을 주로 이용한다. 이 티켓으로는 지정된 날짜 안에 일본 전 지역의 보통 열차와 쾌속 열차를 무제한으로 탑승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지역을 저렴하게 놀러갈 수 있기에 많은 대학생들이 이용한다. 하지만 판매 기간과 이용 기간이 정해져 있다. 학생들의 봄·여름·겨울 방학 전후에 판매와 이용이 가능하기에 시기를 놓치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도 하루 25,000원 정도 가격으로 원하는 곳 어디든 다닐 수 있다는 매력이 정말로 큰 티켓이다.

나는 청춘 18 티켓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기간이 한정적인 것도 나에게는 크게 매력이 없을뿐더러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불편한 의자에 앉아 9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고역이다. 그래도 만약 내가 힐링을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다면 주저없이 청춘 18 티켓을 구매할 것이다. 그럼 나는 주로 무얼 이용해 오사카에 갔느냐? 바로 야간버스이다.

야간버스는 주로 밤 10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출발해 도착지에 이른 아침에 도착하는 버스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 갈 때 타던 좁디 좁은 4열 좌석버스를 상상하면 알기 쉽다. 물론 한국 고속버스나 공항 리무진버스처럼 넓은 3열 좌석 야간버스도 있지만 가성비가 영 아니다. 내가 주로 이용하던 4열 좌석버스는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저렴할 때는 3만 원, 비쌀 때는 편도 7만 원까지 편차가 컸다. 야간버스의 왕복 최저 5만 원이라는 가격 덕분에 도착한 후 종아리부터 올라오는 찌뿌둥함과 관자놀이를 강타하는 찐득한 피로감 따위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었다.

오사카행 야간버스를 타려면 신주쿠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신주쿠역 남쪽 출구로 나가 바로 앞에 있는 왕복 4차선 도로 건너편에 스타일리시한 폰트로 버스타 신주쿠(バスタ新宿)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새로 생긴 느낌의 버스 터미널 1층에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대중적인 식음료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다른 편의시설들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런 시설들은 조악하게 갈라놓은 구역마다 억지로 공간을 채운 느낌이 아니다. 깔끔한 콘크리트 건조물 내부에 실내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그 전체를 은은한 LED 조명이 감싸고 있다. 이러한 배치와 조경이 내가 한국에서 느낀 고속버스 터미널의 삭막함을 경감시킨다. 밖에서 볼 수 있는 버스 터미널의 느낌은 이 정도이다. 나는 신주쿠역에 도착해 밤의 신주쿠 거리를 곁눈질로 쓱 훑는다. 그러고는 곧장 길을 건너와 터미널 건물 아래쪽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만 알 정도로 빼꼼하게 나와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가면 택시 정류장과 임시 정류장 그리고 버스 하차 정류장이 나온다. 한 층 더 위에 있는 승차 정류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움직인다. 그 사이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추운 듯이 두 손을 허벅지 사이에 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뒤로 움직이는 노숙자들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지나치지만 언제나 올 때마다 눈길이 간다.

위층에 도착하니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야간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출입구 옆 편의점에서는 “다음 손님 여기로 오세요!”라는 큰 목소리가 들리고 점내에는 꼬리에 꼬리를 문 긴 줄이 서 있다. 나도 토트백을 뒤적이며 물과 젤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야간버스 운행 도중에 휴게소에 들르지만 자판기와 화장실 정도일 뿐 다른 편의시설은 폐점 시간이라 이용하는 경우가 적다. 야간버스를 타면 나는 주로 창가 좌석에 앉아 도착할 때까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 한 번 안 뜨는 경우가 많다. 그 편이 그나마 괴로운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오사카행 야간버스는 주로 우메다역 근처 아니면 난바역 근처에서 하차한다. 암막 커튼을 쳐 어두컴컴한 버스 안에서 쪽잠을 청하다 아직 해가 덜 떠 하늘 빛이 푸른 아침을 맞이한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쏟아지는 짐 속에서 재빨리 내 캐리어를 찾는다. 사람이 많아야 할 우메다와 난바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끄는 노인과 바쁜 걸음으로 음식점에 납품하고 있는 업자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눕고 싶은 마음에 언제나 가는 사우나로 향한다. 24시간 영업에 수면실까지 완비한 한국 찜질방 느낌인 곳이다. 빠르게 목욕을 마치고 넉넉한 사이즈의 찜질복으로 갈아입는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수면실에 가기 위해 울퉁불퉁한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붙인 계단을 내려간다. 수면실에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인지 25인치 되는 LCD TV가 6대 천장에 달려 있고 각각 다른 채널이 나온다.

콘센트가 옆에 달린 딱딱한 고무 매트리스에 누운 나는 ‘다음에는 알바를 좀 더해서 신칸센 타볼까…’ 하고 구글에 ‘신칸센 싸게 타는 법’을 검색해본다. 편도 2시간 반 밖에 안 걸리지만 왕복 3만 엔이라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에 단념한다. 호텔 체크인이 한참 남았기에 여기서 쌓인 피로를 풀려고 눈을 감는다. 벌써 4년째 이러고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나는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금요일 저녁에 만나 도쿄행 야간버스를 예약한 일요일 밤까지 같이 시간을 보낸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나는 올 때마다 '학교 수업 땡땡이 치고 1주일 눌러앉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여자친구는 사람들이 많이 안 갈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좋았다. 난바에서 조금 멀지만 20분 정도 걸으면 타니마치(谷町)라는 동네가 나온다. 한산한 타니마치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여자친구가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필름 카메라로 풍경을 찍는다. 그중 기억나는 곳은 동네 사람들이 참배하는 작은 신사 옆 짙은 오크나무로 인테리어를 한 케이크 가게이다. 오렌지마멀레이드타르트와 딸기타르트를 하나씩 포장해 신사 앞에 있는 벤치에서 먹는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바람 소리에 햇빛이 조금씩 들어온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오렌지의 상큼함이 입안에서 퍼지니 우리 둘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에 호텔에서 일어나 빠르게 짐을 싼다. 언제나 체크아웃 시간 아슬아슬할 때까지 잠을 잔다. 머리도 엉망으로 헝클어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색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 쓴다. 우리는 아직 풀리지 않은 피로를 어디서 풀까 매번 고민한다. 그러면서 츠다키타마치로 향한다. 타코지조(蛸地蔵)역에서 내리면 언제나 바닷내음이 난다. 나는 언제나 이때 '내가 진짜 오사카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든다. 조그마한 간이역 앞에 타코야키 가게가 있다. 여자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있던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얇은 센베이 2장에 타코야키 두 알을 겹쳐 먹는 타코센(たこせん)을 먹는다. 타코센은 먹기 불편해 흘리기 일쑤이지만 고소한 센베이와 짭짤한 타코야키의 특별하지 않은 그 맛을 잊을 수 없기에 매번 동전지갑을 연다. 타코센을 다 먹고 하염없이 캐리어를 끌고 여자친구 집으로 향한다. 또 언제나 그렇겠지만 집에 도착하고 나면 야간버스 시간까지 쥐 죽은 듯 잘 것이다.

언제나 야간 버스를 타고 나면 하루 종일 몽롱한 기분과 피로 때문에 후회를 하고는 한다. 그 기분은 여행을 끝마치고 도쿄 자취방에 돌아오면 가장 격하게 느낀다. 특히 추운 겨울 아침에 역에서 자취방까지 15분 거리를 걸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탓이겠지. 내년에는 꼭 편하게 오사카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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