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글 : 문창윤

2022년 신년이 밝았다. 나에게 2022년은 초중고와 유학 그리고 병역의 의무까지 총 18년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는 연도이다. 그에 맞게 4월에 취직하는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근무지가 정해진 것이다. 근무지는 도쿄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이바라키현(茨城県)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경기도 파주 즈음에 해당한다. 일본에서 매년 실시하는 전국 자치도 매력도 랭킹(都道府県魅力度ランキング)에 따르면 이바라키현은 언제나 최하위권에 머문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조부모나 친척집이 있다는 정도였다. 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유명한 관광지나 그 지역의 특색을 물어봐도 내가 못 먹는 낫토가 유명한 정도였다.

나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하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록 밴드들이 대거 출연하는 록 페스티벌 ‘ROCK IN JAPAN’ 이 근무지 근처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도 얼마 가지 않았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넘게 이바라키현 히타치 카이힌 공원(ひたち海浜公園)에서 열렸지만 올해부터 이바라키현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개최를 중지시켰다. 그러자 록 페스티벌 운영측은 개최지를 이바라키현 옆 동네인 치바현으로 바꿔버렸다. 그나마 기대하고 있던 이바라키에서의 유흥거리도 없어져버렸다.

외국인 노동자로서 사회 초년생이 될 나에게 불안한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운전이다. 이바라키에서 생활하려면 자동차 운전은 필수. 이바라키는 연안 근처라 휘몰아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자전거나 스쿠터로 통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도쿄까지는 죠반선(常磐線) 전철을 이용하면 1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이바라키현에는 전철이 없어 자동차가 필수이다. 평생을 전철과 버스로만 생활해 온 나에게 급작스럽게 운전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입사의 긴장감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한국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어서 일본에서 운전하는 데 크게 문제는 없다. 한국 운전면허가 일본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에서 재류 자격이 있는 외국인은 대사관에서 한국 운전면허 일어 번역문과 운전 경력 증명서를 발급받아 현지 운전면허 센터에 가지고 가면 일본 운전면허를 발급해준다. 나는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 한 번도 운전해본 적 없는 장롱면허이지만 지금은 면허를 미리 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일본에서 정식으로 면허를 따려면 300만 원이란 막대한 비용과 한 달가량 합숙생활도 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3개월밖에 남지 않았기에 서두를 필요가 있다. 연초부터 졸업 논문과 기말시험, 입사 준비 때문에 긴 겨울방학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싶다.

머릿속에는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4학년이 되고 나서는 놀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처리해야 할 일을 미루는 습관이 더 심해져 언제나 마감이 다가와야 처리했다. 그중에는 오사카에 있는 연인에게 괴롭겠지만 장거리 연애가 더 연장될 것이라는 비보를 전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애초에 그녀도 이 소식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굉장히 망설여진다. 우리는 이 소식을 공유한 뒤 장거리 연애라는 잊고 있었던 나와 그녀 사이의 장애물을 환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와줬으면 하는 그녀의 바람을 내가 모르지 않아서 이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너무나도 망설여진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기에 빨리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다. ‘그녀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담담하게 받아들일지도 몰라.’ 마음 한편에선 이런 생각 혹은 기대가 들기도 하는데, 그러다 침대에서 몸을 돌려 누우면 이런 생각이 잠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나의 망상이란 걸 깨닫는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살갗이 맞닿는 것이 싫어 이불을 돌돌 말아 누워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기만 하다.

타지에서 새로운 무대의 막을 열어 가려는 나에게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 4년간 홀로서기 연습을 반복해온 나지만 3개월 후에는 더 이상의 안전장치는 없다. 아마도 고꾸라지겠지. 양 무릎이 까져서 큰 딱지가 생기고 가려워서 계속 딱지를 떼고 흉터가 남겠지. 이런 큰 기대와 큰 긴장감을 맛보는 것이 2016년 4월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 때 이후로 두 번째이다. 그때 모습에 지금의 나를 투영해본다.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얼마만큼 마음의 그릇을 키웠을까?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웃기기도 하지만 그때의 선택이 틀림없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첫 월급을 받아 무엇을 할까? 부모님에게 빨간 내복이라도 보내 드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다. 다시 한번 풋풋한 모습으로 부모님 앞에 서서 전역을 고하는 병장처럼 멋있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다. 아니면 나만의 소확행을 위해 고급 야키니쿠 가게나 고급 오마카세 스시집에 가서 보란듯이 주문도 해보고 싶다. 이런 것들은 지금하고 있는 알바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영어 표현에 긴장하면 위에 나비가 있다는 말을 기억한다. 뱃속이 쿵쿵하고 울렁거리는 듯한 긴장감. 면접 볼 때 자주 느꼈던 기분이다. 나에게 사회 초년생이 된다는 것은 그런 긴장감은 아니다. 색으로 표현하면 보라색 같다. 애매모호한 기분. 올해 내가 선택하는 것이 또 어떤 미래를 만들어내고 어떤 나를 만들어낼지 기대를 한껏 품는다. 자취방의 어두운 현관을 나와 차가운 공기를 한껏 콧속까지 머금어 보고 싶다.

이번주 연재로 8월부터 시작한 내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내 짧은 역사를 되돌아보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기분을 글로 써보는 것.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어리숙한 모습만 보여드린 것 같다. 독자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문창윤이라는 존재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나는 충분하다. 거의 반년에 걸친 연재를 응원해준 가족과 에디토리얼 편집자님 그리고 지속적으로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 말씀드리고 싶다. 나의 애매모호함이 조금이라도 당신 마음속에 간지럼을 긁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기회가 있으면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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