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성 행동생태학자가 들려주는 돌고래 이야기

1부 ‘사라지는 고래들’에서는 한국의 바다에서 사라져 가는 돌고래를 추적한다. 제주 바다가 고향인 남방큰돌고래와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이 주요 서식지인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두 주인공이다.

남방큰돌고래가 제주 바다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공감대를 형성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업으로 삶을 꾸려 온 제주 어민들에게 돌고래 보호라는 구호는 난데없는 장애물에 가깝다. 누가 먼저 제주 바다에 살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바다의 주인을 정한다면 아마도 인간이 불리해질 것 같은데, 제주 어민들의 생각은 확고부동해 보인다. “돌고래가 휘젓고 가면 어장이 안 돼.” “두 마리 살려준다고 세상이 바뀌나?”(오랫동안 쇼에 동원되었던 제돌이 등 세 마리 남방큰돌고래 방류 시 제주 어민 인터뷰)

인간의 신체 조건은 바다에서 살아가기에 부적합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바다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점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수많은 해양생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남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문명의 삶을 수천 년 동안 이어 왔다.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무례한 방문객이자 약탈자에 지나지 않을 듯싶다.

관심을 갖고 알아 갈수록 달리 보이는 것이 있다. 멀찍이서 바라볼 때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던 제주 바다도 그렇다. 관광차 제주에 가본 사람이라면 연안 가까이 건설된 해상 풍력 발전소를 보았을 테다. 다큐 중 풍력 발전소에 접근해 바닷속에 마이크를 넣어 소리를 들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정준 감독은 보트를 함께 탄 MARC 연구원들에게 “비행기가 지나간다.”라고 말한다. 물속에서 소리를 내어 무리와 소통하는 돌고래에게 풍력 발전기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5화 ‘돌고래의 소리를 듣다’와 12화 ‘돌고래 관광─돌고래와의 거리’ 두 편의 글을 참고하자. 해양 소음이 심할수록 돌고래의 ‘휘슬’은 단순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MARC의 소리 연구가 이제 막 시작되었긴 하지만 우리 남방큰돌고래의 소리 지문이 그런 경향성을 보였다.

돌고래들의 언어가 단순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존의 위협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고 할까. 다큐 1부에 등장하는 꼬리지느러미를 잃은 ‘오래’와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꼬리 부위를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움직여 추진력을 얻는 해양생물이 꼬리를 잃는 사고는 치명적일 수 있다. 2019년 MARC와 핫핑크돌핀스가 발견한 꼬리 없는 남방큰돌고래 ‘오래’는 다행히 지금도 생존해 있다. 다큐 1부의 처음과 나중에 나오는 ‘오래’의 유영 자세에서 변화를 알아볼 수 있는데, ‘오래’는 꼬리가 없는 채로 헤엄치고 무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3화 꼬리가 없는 돌고래 ‘오래’)

‘턱이’는 아래턱에 악성종양(암)이 생겨 입을 벌린 채로 살아가는 남방큰돌고래이다. 턱이에게 종양이 생긴 이유는 모른다. 다큐는 제주 연안에 밀집한 양식어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염수에 주목한다. 해양생물 수의사는 인간과 같은 최종 포식자 지위에 있는 돌고래가 해양 환경의 변화를 알리는 보초병이라고 말했다.

‘상괭이’라는 한국 토종 돌고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지? 상괭이는 오직 아시아 바다에서만 서식하는 쇠돌고래류로, 한국의 서해와 남해에서 특히 많이 살고 있다. 수면 위로 뾰족이 드러나는 등지느러미가 없어 어민들조차 이것이 돌고래인 줄 몰랐다고 한다.

상괭이는 몸길이가 약 2미터인 작은 돌고래다. 먹이를 쫓다가 어망에 잘 걸려들었지만 값어치가 나가지 않아 어부들은 값싼 고래고기로 몇 만 원에 넘기곤 했단다. 그러던 것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고 2016년에는 한국에서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면서 포획은 물론 거래마저 금지되자 어민들은 대부분 그물에 혼획으로 잡혀 질식해 죽은 채로 건져 올려진 상괭이를 바다에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버려진 상괭이의 사체가 단 두 달의 조업 기간 동안 500마리나 수거되었다.

상괭이 떼죽음의 주된 원인인 혼획은 ‘안강망’을 이용한 대규모 조업 방식 때문에 발생한다. 안강망은 입구가 무지막지하게 크고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고깔 모양의 거대한 그물이다. 이 그물을 조류가 센 해역에 설치해 두면, 물살에 밀려온 물고기 떼가 그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작은 물고기를 먹으려고 따라 들어온 상괭이가 안강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니 숨을 쉬러 수면으로 올라갈 수 없어 그물 안에서 질식해 죽는다.

이를 막고자 탈출구가 있는 안강망을 개발해 어민들에게 사용을 권장했지만, 어촌계는 어획량이 3분의 2나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이에 국립과학수산원은 실제 어선에 올라 어획량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실험에 착수했다. 어민들의 주장하는 어획량 감소 수치는 터무니없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하지만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사용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2부 ‘귀신고래를 찾아서’의 촬영지는 러시아의 동쪽 끝 사할린섬과 캄차카 반도. 귀신고래는 한국의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서구 열강의 포경선이 동해로 들이닥쳐 포획한 귀신고래만 1018마리나 되었다고 한다. 포경은 해방 후에도 성업을 이뤄 1977년 즈음이면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정준 감독의 촬영팀과 MARC가 사할린을 찾은 때는 6월. 여름이지만 한국의 초겨울처럼 추운 날씨다. 오호츠크해에 접한 사할린은 귀신고래의 여름 섭식지(feeding ground)다. 6월부터 9월까지 약 3개월간 귀신고래는 사할린섬 인근 바다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으며 여름을 난다. 버딘 박사가 이끄는 러시아의 고래 연구팀은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이 시기 동안 국제동물애호기금(IFAW)이 지어준 건물(어촌의 폐가에 가까운 숙소를 '오성급 호텔'이라 부르며 서로 웃는다)에 머물며 연구를 수행한다. 버딘 박사는 25년간 고래를 연구했다. 처음엔 길게 5년 잡고 연구할 참이었는데 25년이 지난 지금은 앞으로 25년은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귀신고래는 70년 정도 산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명은 gray whale(회색 고래)인데, 외모를 보면 우리 옛사람들이 귀신고래라고 부른 연유가 자연스레 이해된다. 다큐의 표현도 그럴싸하다. “바다를 들어올릴 듯한 포효.” “화석이 살아 꿈틀대는 것 같은 위엄에 압도됐다.” 몸길이 15미터, 몸무게 36톤. 화면으로만 보는 나도 저절로 입이 벌어지며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한번 떠난 귀신고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겠지 하는 아쉬운 마음은 잠깐일 뿐 부산히 돌아가는 우리 바다로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 MARC 연구원님들 죄송)

러시아 연구팀은 캄차카 반도 동부 크로츠키 해안에서도 연구를 진행한다. 이곳에선 혹등고래를 관찰할 수 있다. 혹등고래는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거나 공격받는 동물을 돕는 이타적 행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고래들이 보이면 가까이 접근하여 보트의 엔진을 끈다. 고래가 수면 위로 등을 드러내는 틈을 기다려 화살총을 쏜다. 화살 끝에 속이 빈 작은 원통을 달아 그 속에 고래의 살점을 채취해 분석하려는 것이다. 고래에 제법 근접해도 백발백중은 어렵다. 운좋게 원통 속에 살점이 박히면 조심스럽게 꺼내 지방은 제거하고 피부만 보관한다.

“만약에 네가 와서 ‘네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네가 할 수 있는 연구를 해봐’라고 한다면 저는 완전 오케이예요. 이런 생활의 불편함, 인터넷 안 되는 거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MARC 김미연 연구원)

“화장실 생각보다 안 불편하고요. 씻는 거는 가끔 씻을 수 있게 해주니까 괜찮은 것 같고요. 안 춥고요. 생각보다 모기도 없고요. (…) 하루종일 24시간 얼굴 보며 같이 일하고 그런 건데, 그게 조금 갑갑할 때는 밖에 나가면 밖에 러시아의 대자연이 또 그렇게 멋있어서… 고래 연구 아니어도 3개월 던져주면 3개월 내내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MARC 장수진 연구원)

“나 또한 귀신고래가 넘실대는 바다를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이정준 감독)

돌고래감독은 감독대로 돌고래 연구자는 연구자대로 이곳과 러시아 연구팀이 부러워 죽겠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언제나 경이로움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낀다. 거대한 고래류가 우리 바다에서 사라지기 전을 잠시 상상해본다. 배를 타고 동해, 서해, 남해 어느 바다로 나가든 고래, 돌고래를 만날 수 있었던 곳. <돈룩업>에서 디카프리오의 마지막 대사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 그렇지? 생각보면 그래.”는 장수진 연구원의 말과 맥락이 닿는다. “밍크고래가 만약 사라지고 나면 똑같이 귀신고래처럼, 옛날에 우리나라에 밍크라는 멋있는 고래가 살았는데 이제는 만날 수가 없다고 사람들이 찾아다닐 수가 있잖아요. 항상 멸종된 종이나 개체군을 복원하는 게 사람들에게 크게 인상적으로 다가가는 이벤트인 건 확실한데, 사실 그런 이벤트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 있는 애들을 잘 살려서 함께 갈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에요.”

그나저나 고래와 돌고래를 보고 있으면 정신과 육신이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 느끼는 환각일까. 구독자님, 재미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2주 뒤에는 MARC가 다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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