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역사수정주의를 비롯한 피해자 코스프레,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및 오염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우리가 미디어로밖에 접하지 못해 진짜 개개인의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점을 나는 4년이라는 짧은 유학 생활 동안 겪은 주변 일본인들의 후쿠시마, 특히 방사능 오염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 소개하고 싶다.

1. 2016년 4월 입학 후 점심시간 학식에서
학교식당에는 대학 생협의 광고, 운전면허 합숙 광고(일본에서는 운전면허 취득을 위해 합숙을 하는 게 보통이다), 여행사의 동아리 합숙을 위한 숙소 광고 등 여러 가지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학교가 공익광고로 내건 ‘시설을 깔끔하게 사용합시다’ 같은 상투적인 전단지도 있었다.
나는 한창 일본어 회화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공부하기 위해 그러한 전단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내 눈이 이끌린 건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전단지였다. 처음에는 일본의 농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광고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읽어보니 ‘후쿠시마’산 농산물의 소비 촉진 전단지였다.
2016년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멜트다운이 난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문에 나는 그 광고가 다같이 방사능에 피폭되자는 이야기처럼 들려 먹고 있던 유린기 정식이 너무나 맛없게 느껴졌다. 나는 그 이후로 학식은 가지 않았다.

2. 미야기현 센다이
나는 대학에서 밴드 동아리에 소속해 있다. 동아리 회원이 100명이니 꽤나 큰 규모 같지만 일본에서는 이 정도가 보통이다. 그만큼 일본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 동아리에는 미야기현 센다이 출신 멤버가 많았다. 나는 일본 지리를 잘 몰랐기에 그냥 지방 도시 출신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센다이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10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도 센다이 출신 멤버들은 개의치 않은 듯 귀성길에 나서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센다이 여행을 즐겼다. 나는 워낙 방사능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라 마음속에서는 '일본인들은 방사능에 관한 사실을 모르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3. 키타무라 선배
일본에서는 대화를 할 때 두 가지 화제를 꺼내지 말라고 한다. 정치와 종교다. 이것은 일본의 와(和)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와 문화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화합을 중시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거칠게 한마디로 표현하면 분위기 깨지 말라는 집단적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와 문화는 개인마다 미묘하게 견해차가 발생할 수 있는 정치·종교적 사안에 있어 가급적 사견을 피력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2020년 초 나는 허물없이 지내는 키타무라 선배를 만나러 니가타현에 놀러갔다. 니가타현은 도쿄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니가타현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조금만 태평양 쪽으로 가면 후쿠시마랑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 키타무라와 나는 니가타현 서쪽부터 동북쪽으로 쭉 올라가며 맛집 기행을 하려 했다. 나는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후쿠시마와 가깝기 때문에 키타무라에게 “좀 꺼림칙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키타무라는 “이제는 괜찮아. 나 저번에 센다이 가서 우설도 먹었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

나는 사색이 되어 최근에 본 드라마 체르노빌에 관한 내용을 말하며 방사능 피폭에 대한 위험성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감한 주제에 관해 너무 정색하여 대응했던 것 같아 후회되는 면도 있다.) 키타무라는 석연치 않은 얼굴을 하며 알겠다고 했지만 후쿠시마 문제에 대해 외면하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4. 그래도 외면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일본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는 정치인이 있다. 이름은 야마모토 타로이며 전 연예인이다. 야마모토 타로는 레이와 신센구미(令和新選組)라는 정당을 세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정당은 일본이 쇠퇴하는 원인이 자민당의 장기집권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자민당이 60년 넘게 집권하는 동안 극우 정당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극도의 분열을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로 인해 초래된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외적으로 영토 분쟁, 역사 왜곡 같은 고립 외교를 고집하는데, 이런 노선 역시 포기하고 세계의 일원다운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레이와 신센구미의 이러한 태도를 지켜보는 시민들과 인터넷 여론은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정당이라고 평가한다.

레이와 신센구미는 지치지 않고 전반적인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하고 현 여당과 정부에게 적극적으로 해결을 요구한다. 그중에는 물론 후쿠시마 문제도 있다. 야마모토 타로는 일본인들이 은연중에 후쿠시마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풍조가 형성된 건 현 자민당 정권의 실책이며, 지금까지 후쿠시마 부흥을 위한다며 펼친 정책은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정부가 방사능 수치를 낮춰 후쿠시마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숫자 놀음에 불과한 눈속임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렇지만 레이와 신센구미는 아직까지 정권 교체나 사회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미칠 정도의 힘이 없다.

내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일본인들도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표면으로 꺼내어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를 중시하는 일본의 와 문화가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의식을 낳았고, 그런 의식이 후쿠시마에 대해 침묵으로 대응하도록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가의 주권을 지닌 시민들이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해도 배제되고 외면당하는 약자들이 생겨난다. 그런 마당에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거나 공론화하는 것을 ‘민폐’나 ‘오지랖’이라 여기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미련해 보일 때도 있다. 일본을 좋아해 건너오긴 했으나 아직까지는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내가 일본 사회를 바꾸는 일에 일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애석하다. 그러기에 나는 ‘침묵’하지 않는 일본인들을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고, 이런 고민을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일이 공동체를 위한 진정한 와 문화로 하루 속히 자리 잡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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