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생의 철학공부, 공부철학

글 : 강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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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학교 성적이 일관되게 좋지는 않았다. 물론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겠지만, 나도 아주 잘하던 때도 있었고, 무지막지하게 곤두박질치던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학교 수업을 듣고, 독서실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 암기를 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싫든 좋든 학교가 입시 공부를 하게 하는 고등학교 이후에는 공부를 한다는 사실은 아주 괴로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시험 성적으로 사람들의 순서를 정하고 합격과 불합격을 내는 일만큼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일이 없었다. 단지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만일 지금 고등학교로 돌아가 다시 입시를 치르라고 한다면 나는 극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그 시절의 암울함 자체가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학교 공부나 시험 따위는 괴로워”라고 여겼지만, 내가 관심이 생기는 주제에 대해서는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온종일 몰입하곤 했다. 몰입이 조금 심하게 진행되기도 했는데, 예컨대 한동안 아트록이나 프로그레시브록에 빠지면, 새벽 두세 시까지 ‘전영혁의 25시 데이트’ 같은 것을 들으며 지내고, 서점에 가서 록에 대한 책들을 사다가 공책에다 몇 십장씩 메모하고 암기하기도 했다. 묘하게도 암기한 영어 단어나 수학 문제 풀이는 어딘지 모르게 사라져버렸지만, 그때 내가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곤 했던 주제들은 지금도 다시 찾아보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이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있다. 아마도 어떤 사랑이 일면,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뜨거운 피가 돌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 공부를 하면서도 이런 분할은 이어졌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욕망을 일으킨 철학자나 텍스트는 밤새워서라도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통념적인 해석과 통념적인 배제가 발생했다. 아마 동아시아 철학이 그랬을 것이고, 기독교 세계의 텍스트, 그리고 독일 관념론이나 현대적 휴머니즘 철학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텍스트를 읽고 새로운 관점을 체득하게 되고, 특히 성서를 읽으며 자기 눈으로 텍스트 읽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읽기의 세계로 들어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느님은 자연이다’란 테제를 스스로 정립하고 성서의 모든 문장을 이 테제에 부합하게 읽었다. 성서는 교회 체제와 함께 ‘자연’을 성서와 교회 외부로 밀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성서에는 여전히 ‘자연’이 강력하게 기입되어 있어서, 그것은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범죄 현장의 핏자국과 같다. 마치 나는 현장의 숨겨진 사태를 발견하려고 흔적을 추적하는 탐정과도 같다. 이 자리에 서면 읽기는 텍스트 안에 숨겨진 새로운 흔적들을 찾는 스릴러와 같아진다. 저 피의 흔적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어떤 텍스트든 내 마음대로 읽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읽기 자체가 쓰기와 다름이 없는 창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