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생의 철학공부, 공부철학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할 것 없이 키워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나름 상류층을 흉내 내는 지방 유지의 아들로 살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정치 한다고 갖고 있던 재산을 전부 쏟아붓는 통에 갑자기 빈털터리 집 아이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급격히 바뀐 환경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재수 생활을 거치면서 꽤 방황했는데, 그때 나는 행주를 짜듯 그 혼란들을 짜내야 했다.

그렇지만 여름이 되었는데 겨울처럼 살라는 것은 무리다. 시간이 지나자 약 바른 상처가 아물듯이 금세 잊혔다. 당시 나는 문학이라든가 인문서라든가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없어선지 내 처지의 슬픔이랄까, 괴로움을 외부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들떠 흘러가는 사람이었다. 아마 세상이 바뀌고, 내 처지가 바뀌어도, 대체로 자신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은밀히 믿고 살았던 것 같다. 혼란이 와도 혼란으로 갔다가, 이내 고무줄처럼 다시 평상시로 돌아오는 불변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