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생의 철학공부, 공부철학

글 : 강민혁

나는 학교 시절을 머리에 가끔 떠올린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께서 “학교 다닐 때 공부하는 게 제일 좋은 거야. 나중엔 후회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는커녕 나는 이 충고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안 풀리는 수학 문제 푸느라, 외우기 힘든 영어 단어와 문법을 배우느라, 더군다나 세상에 나와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각종 수업을 듣느라 그 고생을 했다니. 차라리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그러니까 록 음악이나 영화를 진지하게 듣고 보며 깊이 탐구했거나, 아니면 외국의 친구와 펜팔을 하며 영어 작문이나 실컷 해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제대로 탐닉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때 그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아마 나는 록이나 영화, 그리고 영어 작문에는 대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은 만족스러울 때까지 하는 성격이니까.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나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러나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졸졸 끌려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고도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공부하지 못할 상황 말이다. 공부 공동체도 나름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 사회가 원하는 대로 읽고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나중에 보니, 학자들도 그러했다. 철학자는 텍스트와 텍스트 안에 거주하는 기존 철학자들의 성안에 갇혀서 산다. 철학자들은 2,500년 전 공자나 가장 최근의 지젝이나 그 시간적 차이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각각을 연결하고 사용한다. 마치 그들이 옆집에 사는 사람들인 것처럼 둘의 친교를 주선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렇다. 성안에 갇힌 철학자는 끊임없이 텍스트를 읽으며 그 속에 사는 철학자들만 불러내 이야기하고 서로 연결한다. 텍스트가 재료이고, 텍스트가 생산수단이고, 텍스트가 생산물이다. 과연 이 성 밖으로 나가는 철학자가 있을까. 그들에겐 실천조차 이 성안에서 하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성 밖의 사람은 성벽 위에 걸린 깃발과 봉화, 그리고 나팔 소리를 보고 들음으로써만 철학 세계의 신호를 감지할 뿐이다. 뭐, 가능하다면 성문 앞 보초병의 안내가 있을 수는 있겠다. 통상의 철학자들을 보다 보면 철학은 텍스트 무더기가 쌓여 있는 성 밖의 외부는 없는 것도 같다. 당시만 해도 철학자의 세계가 그런 것 같으니, 나도 별수 없이 그 성안에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철학자가 되려면 저 텍스트 속에서만 살아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