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내가 일본에 관심이 없는 한국인이었다면 신사(神社)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야스쿠니(靖国) 신사를 떠올리며 우리를 무자비하게 식민 지배하고도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신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야스쿠니 신사 때문에 일본인들의 평범하디평범한 삶의 일부인 신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알게 된다면 대단히 애석하게 생각할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나의 한없이 짧은 일본 생활 속 경험을 토대로 일본 젊은 세대가 신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경험한 신사는 어떤 곳인지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 신사에 가본 건 키타무라 선배와 함께 새해맞이 의식을 갖기 위해서였다. 일본인들은 새해맞이를 하츠모우데(初詣)라는 신사 참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일부러 하츠모우데로 유명한 신사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리기는 싫어서 학교에서 가까운 신사에 가기로 했다.

신사에 도착하면 입구에 있는 토리이(鳥居)를 지나 본당으로 향한다. 본당에 있는 새전함(불전함 같은 것)에 5엔 동전을 던져 놓고 올해 다짐이나 소원을 빈다. 소원을 빌 때 박수를 두 번 치고 가볍게 목례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오미쿠지’라는 운세가 적힌 종이를 뽑아 올해의 운세를 점쳐본다. 새해맞이 때에는 신사 주변에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야키소바, 타코야키 등 일본 길거리 음식을 싼 가격에 즐기며 일본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반드시 새해나 명절이 아니어도 신사에 들러 참배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여행차 들른 관광지에 유명한 신사가 있다면 그렇다. 한국에서 전라도를 여행할 때 도선사에 들러 대웅전에 모신 불상 앞에서 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자친구가 사는 동네에 있는 스미요시다이샤(住吉大社)에도 가보았다. 스미요시다이샤는 제법 유명한 신사라서 참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곳은 규모도 굉장히 커서 주변에 진을 친 노점상이 일반 신사보다 3배는 많았다. 간이 바이킹, 유령의 집 같은 놀이시설에다, 온갖 먹을거리에 유행하는 애니메이션과 K팝 가수의 얼굴이 그려진 풍선 장식이 화려해 흡사 영화에서 보던 미국의 카니발을 떠오르게 하는 광경이었다. 나는 종교 시설인 신사에서 이런 풍경을 구경한다는 사실을 굉장히 신선하게 느꼈다.

스미요시다이샤에서 여자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눴다. 새해맞이 참배 때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매우 흔하다고 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일본의 새해맞이 풍습은 다분히 종교적인 관습으로 이해되지만, 내 여자친구를 포함한 일본인들 대다수는 자신이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일본인의 일상에 신도(神道)나 신사가 매우 가까이 그리고 매우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종교로 인식하는 경우가 드문 것이다.

이런 인식은 신사가 모시는 신과 관계가 있다. 신사는 신도(神道)라는 토착신앙의 사당이다. 신도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교리에 기반하는 일반적인 종교와 다르다. 유일신을 전제하지 않으며, 선과 악은 불분명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사후세계에서 모두 신이 된다고 믿는다.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는 오래전에 형성되어 이어진 이런 믿음이 존재한다. 마을 곳곳에 신사를 짓고 악령이건 조상신이건 다양한 신을 정성을 다해 모실 수 있는 이유다.

일본의 신도도 세계의 원시신앙이나 토착신앙과 마찬가지로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에서 기원했다. 다만 신도는 지진, 화산, 태풍 등 자연재해가 늘 도사리는 일본의 환경 영향으로 독특한 다신(多神)의 관념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15세기 중엽 전국시대에 이르러 내전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더욱 불안정해진 삶을 버텨야 했던 일본인들은 신에게 더욱 의지하며 신의 가호를 빌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서구 종교의 신과 같은 우월성이나 특별함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기독교의 하느님이나 불교의 부처와 같은 존재가 유독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이유를 이런 배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내 주변에도 일본 불교의 학파인 창가학회(創価学会)¹를 믿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신사에서 새해맞이 참배를 드리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일본의 신사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도 가볍게 방문할 정도로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는, 일상의 문화 공간 같은 역할을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나도 일본에서 어언 4년 정도 생활하다 보니 신사 참배가 생활 습관이 된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 참배할 때는 위화감이 들어 ‘내가 이런 걸 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생일 케이크 촛불 끌 때 소원 빌듯이 자연스럽게 한해 목표를 빈다. 취업을 준비하던 때에는 쿠마가이와 함께 사업 번창과 입시, 취직으로 용하다는 학교 주변 칸다묘진(神田明神)에 가서 참배하고 부적인 오마모리(お守り)를 구입했다. 부적의 용도는 안전 운전 기원, 순산 기원, 입시 성공 기원 등 가지가지다. 나는 당연히 취직 관련 부적을 구입했다. 이런 미신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사는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는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규정하는 여타 종교와 확연히 다른 체계와 내용을 가진 것이 신도이다. 하지만 내가 신사에 가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기원했을 때 나는 신도가 여타의 종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때 초월적 존재에게 해결을 바라고 의탁하면서 위안과 안정을 얻는다. 외부에서 신도를 일본의 종교라고 말하지만, 일본인들 스스로는 신사를 찾는 행위를 종교적인 활동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민폐 끼치는 일을 매우 꺼리는 일본인들이야말로 겉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고민거리, 불안, 동요를 남몰래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이는 내 짐작에 지나지 않지만, 인지상정의 원리가 일본인에게도 통한다면 일본에 그토록 많은 신사는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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