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생의 철학공부, 공부철학

글 : 강민혁

이 글은 사흘 후에 멤버십으로 전환됩니다.

그럭저럭 15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보니,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철학을 접했다. 서구철학도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철학자들을 적절히 알게 된 것 같고, 그 밖에도 중국 춘추전국시대나 인도의 불교를 접했으니 갖출 것은 대략 갖춰진 셈이다. 각각의 철학에는 각각의 개성이 있고, 나름의 힘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서로를 적당히 보완해줄 만한 위치에 존재하며 각자의 힘을 발산한다. 예컨대 중국이나 인도철학은 서구철학을 이해하는 데 어떤 한계에 머무르면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위치에 있다. 알튀세르나 푸코 같은 현대 철학을 읽고 나면, 어쩐지 고대 플라톤의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읽고 싶어진다. 무슨 로테이션이 있어서 규칙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아니고, 마음 가는 대로 혹은 책이 지시하는 대로 흐름이 이어진다. 단지 우연히 손에 잡히면 그것으로 몰입하여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공부해온 이력을 회상해보면 그것은 마치 나선형 나사를 조이는 것 같다. 주자에 대해 공부한 이력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처음에 강의로 『근사록』을 접했는데, 마음이 쉽게 가지 않았다. 나사 입장에서 보면 구멍도 찾지 못하고 떨어진 격. 그런데 시간이 흘러 세미나에서 『주자어류선집』(미우라 구니오 역주, 예문서원)을 읽게 되면서 불현듯 감동이 찾아와 앎의 나사를 조금 조이고, 시간이 지나 무슨 글을 쓰기 위해 『인간 주자』(미우라 구니오 지음, 창비)를 읽었는데, 인간적으로도 감읍하게 되었고, 또 시간이 흘러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으면서, 진래라는 걸출한 중국 주석가를 만났는데, 그가 쓴 『주희의 철학』(이종란 외 옮김, 예문서원)으로 확장되며 주자를 심화하여 읽게 되고, 그후에 야스다 지로, 시마다 겐지 같은 주석가들의 책도 참조하면서 주자에 대한 다른 글들과 동아시아 논문 중 주자를 언급하는 부분의 맥락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앎의 나사가 좀 더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사를 한꺼번에 돌려 조이는 게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조이는 것이다. 이제는 처음에 거부감을 느끼던 『근사록』도 좋다. 아마 나같이 주업이 아닌 사람만 이렇게 여유롭게 공부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게 내게는 진짜 공부한다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