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2020년 8월 고대하던 여름 방학이 왔다. 어디 해외를 나가려고 해도 2주 격리라는 벽에 부딪혔다. 일본 국내 여행은 일본 정부가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여행 경비를 보조해주는 ‘Go to Travel’ 이라는 사업을 실시한 덕분에 싸게 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백신과 치료제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여행’이라는 안일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어김없이 집콕을 이어 나가고 있던 즈음, 오랜만에 쿠마가이에게 연락이 왔다. 쿠마가이는 2020년 3월 대학을 졸업하고 4월 한 중견 인터넷 인프라 건설업체의 종합직(3화 '멤버십 채용' 참고)으로 입사했다. 4월부터 7월까지의 기본 연수를 마친 후 다행히 도쿄 시부야에 있는 본사에 배정을 받았다. 그 때문에 상반기에 정신이 없었는지 통 연락이 없었다. 오랜만의 연락이라 나도 기쁘게 근황을 따라잡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너는 인턴 안 해?” 쿠마가이가 나에게 물었다. 쿠마가이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며 인턴을 통해 빠른 취업 준비를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야 일본 취업 준비에 필요한 필수 역량인 ‘자기 분석’을 미리 할 수 있어 4학년 봄 때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취업 세미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단다.    

쿠마가이의 조언대로 일본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취업 플랫폼인 ‘리쿠나비’와 ‘마이나비’ 두 곳에 바로 등록했다. 등록한 플랫폼에서 몇 가지 인적 사항을 적고 관심을 가진 업종을 선택하면 추천 기업과 현재 모집 기업을 표시해 줬다.

작년 유급휴가 사용률 100%, 사택 제공, 신입사원 연수 등 여러 가지 홍보 문구를 즐비하게 내세운 기업들이 대학생들을 유혹했다. 나는 졸업 후 무슨 업계로 진출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복리후생이 좋은 업계를 중심으로 인턴 지원서를 넣었다.

대부분의 인턴 지원서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 중 가장 열심히 했던 일에 대해 300자 분량으로 작성하는 문항과 인턴십에 지원하는 이유를 200자 분량으로 작성하는 문항이 있었다. 처음에는 두서없는 문장을 남발하여 조금 흥미가 있다 할 기업의 인턴십은 전부 떨어졌다.

나는 인턴십에서부터 잘 안 되는 바람에 제대로 쓴맛을 봤다. 시행착오를 몇 번 겪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기업별로 제출해야 하는 자소서의 포맷도 완성했다. 그러나 노하우가 생겨도 서류 탈락이 계속되다 보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인턴십 하나는 합격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결국에 내가 참가한 인턴십 중 효과를 본 곳은 나고야에 본사를 둔 종합 인테리어 자재 메이커였다. 나는 이 인턴십에서 실제로 이 기업이 닌텐도 스위치 게임인 ‘동물의 숲’과 협업한 케이스를 바탕으로 인테리어 메이커가 어떤 업계와 협업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해서 토론 및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면접관들은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와 협력하는 자세를 평가 후 조기 선발 인원을 선출했다. 다행히도 조기 선발 자격을 획득한 나는 이 기세로 내정을 받아 취업 준비를 끝내고 싶었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 세미나가 시작하기 전 외국인 유학생 취직을 서포트해주는 전문가와 면담을 진행했다. 그분이 말하길 일본의 기형적인 채용 구조 때문에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자소서를 30개 제출해야 내정을 하나 받아 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들은 그러한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 일반적인 제출 수보다 적은 수의 자소서를 제출해 내정을 못 받거나 원하지 않는 기업에 취직한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에 취직은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 감각은 상대적이었다.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 취직하는 것이 쉬운 것은 맞지만, 일본에서 내 기대를 충족할 만큼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여전히 난이도 있는 도전이었다.

이 난이도란 한국에서 취직할 때 요구하는 학점 학과 자격증 이런 실무적인 지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채용이란 그 회사에서 처음부터 키워 나갈 도화지를 찾는 과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상학부(商學部)¹에 소속해 있는 나는 신규 대졸자 취직에서 학부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과는 연구직이라는 티오가 존재하기 때문에 조금 다른 취급을 받지만 상경계열 및 문과계열 학부 대부분 비슷한 처지에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학점은 장학금을 준비하는 학생과 일부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학생들이 주로 관리한다. 내 친구 쿠마가이는 나보다 학점이 10배 더 나쁜 수준(나도 비참한 수준이다)이지만 졸업하는 것이 힘들었을 뿐 취직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러면 뭐가 중요할까? 실질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학생의 ‘외견’이었다. ‘외견’이라 하면은 ‘외모’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학생의 청결함과 차림새를 말한다. 실제 전문가와의 상담에서도 인사 담당자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 중 7할이 외견이라고 답변한 결과도 있었다. 정말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장단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경험을 수치적으로 부풀려서 기입하고 발표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들으면 좋아할 만한 답변을 인위적으로 작성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내가 보기엔 일본에서의 취업 준비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천하제일 거짓말 대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대목을 읽으며 믿기 어려워 할 독자를 위해 말한다. 이건 나만의 체험도 아니고, 일본의 아주 극소수 회사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핸드폰 달력에는 취업 세미나로 일정이 가득했다. 그 취업 세미나에서는 온종일 상반신은 갑갑한 정장을 입고 하의는 널찍한 수면 바지를 입은 채로 졸린 눈과 하품을 참으며 기업 인사관리자가 하는 말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달력에 자소서 마감일을 기록했다.

초반에 제출했던 자소서들은 전부 반려되었다. 그중에는 붙을 자신이 있었던, 조기 선발 티오였던 나고야의 인테리어 자재 메이커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취업 준비를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온데간데 사라졌지만 절박함이 생겼다.

5월달에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면접을 보기 시작했지만 주변 한국인 유학생과 일본인 친구들이 내정을 받기 시작했다. 굉장히 초조했다. 나는 이 초조함의 원인이 시간제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신규 대졸자 취준은 대부분 여름 방학에 끝이 난다. 그 이후로 가면 양질의 기업들은 신규 대졸자 채용을 마감하고 내년 졸업 예정자 인턴십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대졸자라는 이점은 도루묵이 된다.

그리고 취준에서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했던 면접은 랜선 취준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일본의 안 좋은 인터넷 환경으로 줌을 이용해 두괄식 답변만 앵무새 마냥 되뇌었다.

산전수전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6월에 관동(関東) 지방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 회사로부터 내정(内定)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내정(内々定) 이다. 원칙상 일본 기업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10월부터 내정을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전부터 채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적효력이 없는, 기업과 학생 사이의 약속인 내내정이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많은 학생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5월 골든 위크² 직전부터 6월 사이에 내내정을 받고, 7월과 8월 사이에 한 곳을 고른다. 그리고 10월 1일에 내정식(内定式) 있다. 이 절차를 거침으로써 기업과 학생의 내정이 공식화되고 법적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해본 적이 없지만 진로 이행을 앞둔 고등/대학생의 취업 환경이 날로 어려워진 현실을 잘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 취업 상황을 비교해보며 내가 가장 다르다고 느낀 점은 학생들이 감내해야 하는 노력과 고통의 세기인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가 여러 해 동안 해소되지 않아, 공시 응시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일반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날로 요구되는 역량(이른바 '스펙')이 높아져 왔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한국 학생들은 대학교 진학보다는 고등학교 때부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에서는 봉사활동 등의 과외활동 실적을 쌓고 학점까지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뼈빠지게 준비한다.

일본의 기업들은 규모 여하를 막론하고 채용 과정에서 학생의 절대적인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인사담당자가 재량껏 지원자들을 상대 평가해 채용을 결정한다. 나는 이런 채용 방식이 불안할 정도로 의구심이 든다. 나는 이 과정에서 어떠한 실무적 역량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 입사 후 내가 과연 어떠한 능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하고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나도 일본 사회처럼 갈라파고스화되는 게 아닌지 겁도 난다. 과연 나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일까?

💐 에디토리얼 뉴스레터를 통해 글을 쓰고 출판을 원하시는 분은  editorial@editorialbooks.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에디토리얼은 자기계발 분야의 도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창작자 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에디토리얼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