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살아가는 한국 Z세대입니다

내가 일본에 재입국하고 일본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일본 정부는 전국적인 긴급사태선언을 선포하고 자영업자에 대한 영업시간 규제나 야외 활동 자숙을 ‘요청’했다. 정부의 지침에 강제성은 없었다.

그러나 신종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이 만연하던 시기라 시민들도 협조하는 분위기에 동참했다. 가게는 임시 휴업을, 기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 주변 슈퍼와 마트는 사재기하는 사람들로 넘쳐나 진열대에는 한국의 매운 라면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집에 식재료는 없지만 2리터 물을 12개 정도 언제나 상비해놨기 때문에 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도 정부의 긴급사태선언을 지침 삼아 4월 개강을 연기하고 봄 방학을 5월까지 연장했다. 빠르면 3학년 여름방학부터 취업 준비가 시작되는 일본에서 이렇게 크게 일정이 밀리는 경우는 아마 처음이 아니었을까.

일본 기업의 대졸자 신규 채용은 일본경제단체연합회(약칭 경단련)에서 설정한 일정에 따라 일제히 시작한다.(대학교 4학년 1학기 4월부터 취업 준비를 위한 집단 설명회나 면접 등이 활발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인구절벽을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맞이하고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돌입한 일본은 젊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고 3학년 여름방학부터 장기 인턴과 원데이 인턴을 통해 대졸자 신규 모집을 빠르게 시작했다. 참고로 일본 기업의 인턴은 학생이 실무를 경험하면서 스킬을 쌓는 방식이 주가 아니라, 기업에 맞는 인재를 거르기 위한 세미나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기업의 임직원과의 교류와 사내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 많다.

나는 달라진 채용 시기와 방식에  대비해야 했다. 유명하다 싶은 취업 설명회는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게 당연했던 취업 시장은 다행히도 발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벤트를 전환했다.

이러한 대규모 시도가 처음이었던 일본 사회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느린 속도의 변화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특히 많은 젊은 세대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취업 이벤트의 급격한 온라인화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취업 준비생과 채용 기업의 불편을 초래했다.

먼저, 학생들은 학교에서 노트북을 빌리거나 거금을 들여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빠른 인터넷 연결과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일본 원룸 인터넷은 가끔 연결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 기업은 ‘포텐셜 채용’¹이라는 방식으로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면접을 진행하다 보니, 화면을 통해 말로만 자신의 포텐셜을 전달해야 하는 지원자나, 불충분한 정보로 판단해야 하는 채용자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원자의 잠재력을 평가하기 위한 대표적인 질문이 ‘学力’(가쿠치카라고 읽는다)이다. ‘학력’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평가 내용으로는 지원자가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학생 때 가장 힘을 쏟았던 일에 대해서 묻는다. 지원자의 답변은 정량적인 수치로 환산된다. 하지만 면접관이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지원자의 서술 내용과 그 사람의 과거 경험을 종합하여 결론적으로는 인성을 평가한다. 

이러한 사상 최초의 온라인 취업 준비를 겪어야 했던 나로서는 외국인이라는 장점이자 장애물에 더해 허들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장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한국에도 잘 알려졌듯 공급자로서 일본 대졸자 취업 시장은 그야말로 호황이다. 아주 근시안적인 생각이지만 젊은 세대가 급격하게 줄어든 덕분에 나는 이득을 본 것이다.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경쟁률을 생각하면, 일본의 포텐셜 채용을 통한 내정은 과장이 아니라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만큼 일본의 불황이 길어짐에 따라 정규직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지지 못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다 보니 비정규직의 기간화(基幹化, 한국에서 사용하는 ‘상시화’와 같은 의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그대로이고, 한 사람에 부여되는 노동의 강도는 점점 상승했다. 이처럼 일본 노동시장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과 차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일본 기업 문화의 상징이었던 연공서열제도는 노동자에게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혜택을 주지만, 반면에 정규직에게 부서 이동을 포함한 전국 발령을 감수케 하거나 수당 없는 초과근무를 무제한적으로 강제하는 단점이 있었다. 2010년대 이후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성과제를 도입하는 등 연공제도를 포기하는 기업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본인들이 ‘멤버십 채용’²이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채용 방식이, 노동과 고용의 유연성이 강화된 한국과 미국의 모델을 좇아 ‘잡(JOB) 채용’³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 역시 생산성 향상과 이직률 저하, 채용 강화, 노동자의 만족도 상승을 목적으로 한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근로 방식 개혁’(働き方改革)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이를 크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제 노동자들도 말로만 근로 방식 개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결국 마치 개항기의 쇄국 세력처럼 버티고 있던 노동 환경도 전대미문의 신종 감염병이라는 외부 요일으로 인해 ‘개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 정부와 사회에서 주도하던 노동과 고용의 유연화는 신종 감염병를 계기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면을 고집하거나 도장을 고집하는 아날로그적 행정 처리도 점점 디지털화되어 일본 표준이었던 것을 세계 표준에 맞추고 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잃어버린 30년의 일본 사회가 비록 외부 요인 앞에 굴복해 ‘개국’하는 형국이 되었지만,  다시 한 번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장이 허리를 뻗고 있다고 생각한다. 왕년의 힘자랑까지는 못하겠지만 일본에서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위한 방향으로 일본이 재기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취업 준비에 임했다. 모든 방식이 바뀐 첫 취업 준비 세대라 불명확한 부분이 많지만, 오히려 워라밸이나 이직의 가능성과 같은 젊은 세대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관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향후 일본 노동시장의 안전성이 없어질 가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과연 지금 당장 사회에서 1인분을 하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며 포텐셜 채용을 대비한 과거 경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일관성을 분석하는 ‘자기 분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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